분명한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응징과 화해. 이런 디즈니 만화영화의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 같다. 악인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으며, 때로는 선한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보물성(Treasure Planet)'이 그 증거이다.미래세계, 꼬마 짐(목소리연기 조셉 고든 레비트)은 엄마와 밤 인사를 마치고도 몰래 불을 밝혀 '보물성' 동화책을 읽으며 밤을 새우는 귀여운 꼬마.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짐은 어느새 문제아로 바뀌었다. 먼 옛날 아버지는 집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는 혼자 여인숙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내린 한 여행객이 보물성 지도를 건네주며 짐의 인생은 바뀐다. 짐은 여인숙 단골손님인 닥터 도플러와 함께 우주선을 빌려 여행을 떠나지만, 탐험선의 공기가 심상찮다. 아멜리아 선장(엠마 톰슨)은 지도를 빼앗아 금고에 넣어두고, 짐을 주방장 보조로 임명하고 주방장 존 실버(브라이언 머레이)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지도를 넘겨준 여행객은 "사이보그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존 실버가 바로 그 사이보그가 아닌가.
'보물성'에서 해적으로 밝혀지는 존 실버와 짐이 보여주는 '우정'은 꽤나 설득력이 강하다. 존은 짐에게 "언젠가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보물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을 때도 차마 짐을 해치지 못한다. 모든 싸움이 끝난 후 짐은 "감옥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존 실버를 놓아준다. '라이언 킹' '뮬란' '포카 혼타스' 등 선악 구도가 명확한 이전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지 못했던 성숙한 인간적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워즈'의 R2D2를 연상케 하는 수다쟁이 로보트 벤, 어떤 형태로든 모방이 가능한 미래 생명체 모프, '릴로 앤 스티치'에서 보였던 갖가지 우주 괴물을 변형한 우주 생명체 등 볼거리가 풍성해 어린이들의 눈길을 잡는다.
세련된 화면의 비밀은 2D와 3D 애니메이션의 결합. 3D 애니메이션에 붓 터치까지 꼼꼼히 살아있는 2D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환상적 공간을 창조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에 소홀하지 않다. 화면구성의 '7대3' 원칙은 친숙함을 강조하는 비법. 2D와 3D, 인간 몸과 기계 부속품, 클래식 음악과 팜 음악, 주인공 존과 짐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율까지 모두 이 원칙으로 배치됐다.
드림웍스와 '치킨 런'의 영국 애드먼 등 후발 업체들에 의해 맹렬히 추격당해온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복권'을 노릴만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물론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원하는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감독 존 머스커, 론 클레멘츠. 1월10일 개봉. 전체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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