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체험한 칠전팔기의 역전 드라마를 되돌아 보면 대권이란 과연 천운(天運)이 함께해야 함을 실감나게 한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얻은 대권이라 영광스러움이 남다르듯 5년 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기 위한 노력 또한 전임 대통령과는 분명 달라져야 할 것이다.이번 선거 결과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동서분할의 지역구도다. 역대 대통령들이 지역감정의 해소를 강조하였지만 실제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적은 거의 드물다. 노 당선자는 그 골이 더욱 깊어진 동서분할의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참신하고 유능하며 도덕성이 있는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인사정책에서부터 희망찬 출발의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라고 불리운다.
노 당선자는 4대 비전 20대 기본정책, 150여항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선거공약을 제시하였다. 선거공약은 실천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그러나 그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재원의 뒷받침이 충분치 못할 때는 우선 순위를 재정립하고 차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지혜로운 처세술이다. 노 당선자도 기자회견에서 표를 의식하다 보면 때로는 실제보다는 크게 또는 과장되게 포장되어 제시되는 경우도 있음을 실토하였다. 유능한 대통령의 잣대의 하나로 선거 캠페인 기간에 약속한 공약들을 재임 기간에 어떻게 슬기롭게 재조정 또는 폐기처분 하느냐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과제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채무는 125조원에 이르고 여기에다 국가가 대신 갚아야 하는 보증채무도 106조원에 달하고 있다. 재정 건전화가 시급히 요구되는 4대 연금 및 의료보험재정, 남북경협에 따르는 재정 수요 등 당면하고 있는 정부 재정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다수 공약의 재수정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선거 막바지에 최대의 쟁점 사항이었던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도 광범한 여론 수렴과 치밀한 사전 계획 및 재원 조달 방안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부작용이 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읍지의 이전이란 대과제는 백년대계의 과업 중 하나이다.
필요할 경우에는 상대 후보의 공약도 흔쾌히 채택하는 자세가 요망되며 이번 선거와 같은 박빙의 승부에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들을 포용하는 정책 입안이 무엇보다 중차대할 것이다.
새 정부 초기에는 정권 말기에 다소 이완되었던 기업, 금융, 공공 부문 개혁이 지속될 수 있는 불을 지피는 과제는 물론 재정 건전화가 요구되는 4대 연금, 의료보험제도 개혁도 과감하게 단행되어야 할 것이다.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재정 현황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데 앞장서겠다는 용기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국민에게 땀과 눈물을 요구하는 진솔한 자세가 21세기 첫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 해가 지났습니다. 무척 번거러운 한 해였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도 종교도 어느 구석 잠잠하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감격스러운 일이 넘쳤는가 하면 답답하고 분하기가 그지없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통령 아들들을 비롯한 측근의 비행을 접할 때는 내내 배신을 당한 것 같고 억울한 것 같은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 저 혼자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답답하고 분하고 억울한 이야기는 이제 이 해의 끝에서 조용히 사르고 갑시다. 그리고 바로 그 잿더미에서 넉넉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지혜의 이야기들을 마련하십시다. 노무현 당선자가 앞장서시기를 기대해봅니다. 5년 후 퇴임 때를 그리면서 말입니다.
이 만 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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