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차기 정부 국정운영 기조가 일단 안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변화와 개혁 요구를 충실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국정 운영의 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안정 기조는 노 당선자가 공직 사회의 안정을 위해 정부 조직개편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 '정치형 내각' 보다는 '전문가형 내각' 구상에 무게를 둔 데서도 확인된다. 노 당선자는 또 국정의 안정감 확보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반대 세력의 불안감을 해소해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공직 사회 안정
노 당선자측의 한 핵심 인사는 22일 정부 조직 개편 등 공직 사회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을 부정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 당선자는 공무원들에게 개혁의 실천적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공직 사회의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을 해외정보처로 개편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대선 공약에 대해서 임기 중의 장기 과제임이 강조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대선 결과를 큰 틀에서 보면 1997년처럼 여야간 정권교체의 성격보다는 정권의 승계라는 측면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공직 사회의 급격한 변동 요인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 당선자측이 정권 인수위의 성격 및 인선과 관련, 정치적 비중을 줄이고 정책·실무형으로 조정하려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 사회의 안정은 정책의 일관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 당선자측 관계자는 "노 당선자는 현 정부의 정책적 시행착오를 수정·보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본적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중심의 인사 구상
아직 구체적인 것은 아니나 어렴풋하게 드러나고 있는 노 당선자의 새 정부 인사 구상은 매우 신중하다. 국무총리, 국정원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 이른바 '빅3'의 인선을 서두르지 않고 국정운영의 종합적 상황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숙고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정 주요 포스트를 인선하는 데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인사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 국정의 불안정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97년 DJP 공동정부 출범 때처럼 국무총리가 이미 정해져 있고 각료의 배분도 확정돼 있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이런 인사 구상을 가능케 하고 있다. DJP 공동정부처럼 의원이 대거 내각에 진출하는 '정치형 내각' 인사가 상당부분 수정될 것이란 얘기도 특기할 만하다. 노 당선자측 핵심 인사는 "현 정부 초기에 당의 주요 인력이 내각에 포진함으로써 오히려 당이 공동화하고 정치가 극한 대결로 치달았던 상황에 대해 노 당선자가 매우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내각 구성에 정치인이 되도록 배제되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내각의 중요 자리를 메우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한미관계 강화
노 당선자는 20일 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취임이후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는 등 한미관계에서도 안정감을 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북한의 핵 동결 해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것도 정확한 상황 파악과 한미간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 국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졸속·돌출 처방은 내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발적 정치개혁 강조
노 당선자는 국민의 변화 요구에 부응, 정치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하지만 자신이 직접 정치개혁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 당선자가 정치개혁을 주도하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극단적 정쟁을 빚을 수 있다는 게 노 당선자측 시각이다. 한 관계자는 22일 "노 당선자는 정치개혁 의지를 화두로 던진 만큼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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