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新 국토기행](11)봉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新 국토기행](11)봉화

입력
2002.12.23 00:00
0 0

모든 것이 정지한 듯 했다. 풍경도 건물도 사람도 영하로 곤두박질친 기온 속에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읍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돌돌 대는 소리마저 허공 속에 멈춰 버렸다. 기상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1991년부터 10년간 평균 최저기온 영하 18.95도)으로 발표한 곳, 그리고 10월3일 올해 들어 서리가 가장 빨리 내린 곳, 전국 최고의 오지 경북 봉화(奉化)군이다.중앙고속도로 영주IC에서 28번, 36번 국도를 갈아타고 도착한 봉화. 태백산(1,567m) 구운산(1,314m) 금산(1,245m) 선달산(1,236m)의 높다란 산등성이를 보니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60)의 말이 맞았다. '안동에서 북쪽 200리쯤 되는 곳에 태백산이 있고, 산 밑에 내성 춘양 소천 재산의 네 마을이 있다. 모두 깊은 두메인데, 두메 백성들이 모여 산다. 병란과 세상을 피해 살 만한 곳이다.'(택리지)

봉화는 정말 두메였다. 봉화는 전체 면적의 82.8%가 산이다. 그것도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싼 산이다. 건설교통부가 7월 발표한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 임야는 평당 119원으로 전국 최저. '껌 값'보다 싸다.

봉화읍에서 비티재를 넘어 철교 밑으로 좌회전해서 닿은 닭실마을(유곡리·酉谷里). 풍수지리상 암수 닭 두 마리가 날개를 펴 알을 감싸 안은 형국(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닭실마을이다. '닭실한과 부녀회'라는 허름한 간판이 걸린 한옥에 들어가보니 인상 푸근한 할머니 10여 명이 약과 강정 등 한과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450년이라는 전국 최고(最古) 역사와 연간 4,000만∼1억원 판매량을 자랑하는 전통 유과의 산실이다. 그런데 평균 연령 60대 중반인 할머니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영 이상하다. "새댁!" "왜요? 할머니!"

안동에서 22세 때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는 이임형(71)씨의 설명이다. "이분들 모두 안동 권씨 며느리들이야. 이곳 닭실마을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집성촌이거든. 내가 36세손 며느리, 저기 앉은 사람이 39세손 며느리야." '충재 할배'(충재권벌·1478∼1548)의 불천위 제사 때부터 만들어왔다는 이 유과는 "바삭바삭하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조금씩 전국에 소문이 나" 1990년부터 일반 판매를 하고 있다.

평생 비녀를 뽑아본 적이 없다는 이 할머니의 말처럼, 그리고 봉화군청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유교문화권 관광자원화 사업'일 정도로 봉화는 오랜 전통과, 그 전통을 묵묵히 이어오는 사람들의 고장이었다. 한과마을에서 3㎞ 정도 북쪽에 위치한 청암정(靑岩亭)도 '병란과 세상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 옛 사람들의 정취와 유물이 가득한 곳. 인근 충재유물관에는 교지와 도첩 등 무려 487점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가 빽빽하다.

충재 선생의 19세손 권종목(60)씨는 유곡리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렸을 적에는 비 올 때 추녀 밑으로만 다녀도 비를 안 맞을 정도였지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집 밖에서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나면 '할배요?',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나면 '할매요?' 했을 만큼 모든 주민이 한 친척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120가구만이 안동 권씨 일가입니다. 점점 대도시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죠."

닭실마을을 괴롭히는 '인구감소' 현상은 봉화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다. 봉화군 면적은 서울의 2배이지만 인구는 고작 4만 2,000여 명. 하도 출생률이 낮다 보니 명호면 기관단체장 모임인 청량회는 최근 '명호면 인구 3,000명 유지를 위한 대책모임'을 갖고 명호면 태생 신생아에게 축하금 10만원을 지급키로 했을 정도다. 일할 만한 산업체는 거의 없고 명문중고교도 전무하다 보니 인구를 늘려야 할 젊은 부부들이 인근 영주나 안동 대구로 빠져나간 탓이다.

"해방 전만 해도 풀무질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이 수백 명 이곳 봉화에 머물렀어. 그런데 지금은 돈을 줘도 방짜유기 만드는 일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 젊은 사람 다 떠나면 이 유기도 곧 끝장 날 거야." 봉화읍에서 50년 가까이 방짜유기를 만들어 온 김선익(67)씨의 하소연이다.

군정 현안 1순위로 꼽히는 것도 인구 증가다. 우수 교사를 유치해 봉화고와 봉화여고를 남녀공학으로 통합하고, 인근 문수산에 민자 유치로 대규모 스키장을 세우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인희 봉화군수는 "지난해 봉화사랑 카드를 발행해 적립금으로 2005년 20억원의 교육발전기금을 마련키로 한 것도 명문고를 키워 인구를 늘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스키장과 연수원 건설 등 관광산업 개발을 통해 중학교만 졸업하면 타지로 나가는 젊은 층이 계속 봉화에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체라곤 농공단지 내 농산물가공 인조섬유 화학제품 등을 생산하는 14개 중소업체와 삼육식품, 석포면 영풍석포제련소가 전부인 봉화. 이 탓에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9.9%를 기록, 전남 장흥(9.3%)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오죽하면 매해 8월 읍내의 내성천에 낙동강 은어를 풀어서까지 은어축제를 열겠어요?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하룻밤 묵어가 달라는 것이죠." 동행한 군청 직원의 푸념이다.

그나마 봉화를 먹여 살리는 것은 매년 80톤이 생산되는 송이 버섯. "봉화에는 한 집 건너 송이전골집과 송이돌솥밥집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송이가 지천이다. 맛과 향이 뛰어나 연간 40억원의 농가소득은 물론 매년 9월 송이축제를 통해 관광객도 끌어들이는 효자 상품이지만, 재배가 불가능한 것이 치명적인 약점. 당귀 천궁 작약 등 약초를 먹여 키운 한약우(牛)를 브랜드화해 봉화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 계획도 있지만 전국적 판매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봉화에는 희망이 있다. 바로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맘껏 뛰어 놀며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다. 물야면 오록리 물야초등학교. 지난해 산림청이 '아름다운 학교 숲'으로 단독 지정한 아담한 교정이다. 200∼300년생 소나무 80여 그루와 50∼150년생 소나무 110여 그루, 느티나무와 향나무 520여 그루가 어우러진 모양이 한폭의 그림 같다. 운동장으로 뛰어나오는 10여 명의 아이들. "한 학년이 한 반, 한 반이 10∼20명"이란다.

차주헌(10·4년)군이 들려주는 이곳 아이들의 일상은 그대로 동화다. "여름에 저 숲속에 들어가면 산딸기가 정말 많아요. 뱀딸기도 많지만 맛은 없어요. 수업이 끝나면 동네 형들과 축구나 숨바꼭질을 하며 놀아요. 선생님도 아주 친절해요."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는 이 아이가 대도시 못지않은 교육혜택을 받으며 영원히 봉화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봉화 어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봉화=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사진 조영호기자 voldo@hk.co.kr

■서울서 귀농한 송성일씨

봉화에는 전통과 터줏대감만 있는 게 아니다. 빡빡한 도심 생활이 못 견디게 싫어 굳이 전국 최고의 오지인 봉화를 찾아 들어온 타 지역 출신도 있다. 명호면 풍호1리 비나리 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송성일(40)씨는 '모두가 떠나려 하는' 봉화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귀농인이다.

"1997년 서울에서 민주노총 홍보물을 제작할 때였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내 몸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이곳 봉화로 왔어요. 왜 하필 봉화냐구요? 땅값이 가장 쌌거든요. 전세금 4,000만원을 들고 거의 무작정 귀농했죠."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송씨는 잠시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출판사도 경영했던 전형적인 도시 엘리트. 그러나 결혼 후 10년 동안 10번이나 이사를 했을 정도로 고단한 도시 생활은 그에게 무력감만 심어줬다. "그렇다고 헬렌 니어링 같은 자연주의자의 삶을 꿈 꾼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내 노동력으로 살고 시간이 나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싶었을 뿐이죠."

그가 처음 봉화에 와 한 일은 고추농사 품팔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일당 2만1,000원을 받는 중노동이었지만 농사 경험이 전무한 그로서는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산비탈의 밭 5,000평을 임대해 수박 참깨 호박 등을 심었고, 1999년에는 "창작활동을 보장해달라"는 단서를 달고 서양화가인 아내 류준화(39)씨와 딸 송화(12·명호초5)양도 합류했다. 지난해부터는 지인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그나마 돈이 되는 고추만 심고 있다.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하다 보면 '흙의 정신'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도시 생활은 무조건 악이고, 시골 생활은 무조건 선이라는 생각은 농촌 현실을 너무 모르는 단견입니다. 또 시골 아이들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소외됐는지 아세요? 친구들도 없고 별다른 교육시설도 없기 때문에 집이나 면사무소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농사꾼으로 변신한 지 5년째. 그 새 빚은 1억원으로 늘었지만 꿈은 잃지 않았다. 지난해 영농후계자로 선정된 그는 50가구가 모여 사는 비나리마을을 관광객이 감자도 캐고 사과나 옥수수를 따며 1박2일 정도 머물 수 있는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탈바꿈할 계획. "봉화는 일교차가 심해 작물 대부분이 당도가 높아요.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 셈이죠. 장기적으로 생태마을로 개조해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제 소박한 꿈입니다."

/김관명기자

■경북 봉화 현황 2002년 11월 현재

인구/ 4만2,865명(전체 1만3,783 가구 중 농가구 7,377가구)

면적/ 1,201㎢(임야 82.8%, 경작지 11.0%)

위치/ 동쪽에 울진군 영양군, 서쪽에 영주시, 남쪽에 안동시, 북쪽에 영월군 태백시 삼척시

행정구분/ 1읍(봉화) 9면(명호 물야 봉성 춘양 재산 소천 법전 상운 석포)

문화재/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 서동리삼층석탑(보물 52호) 근사록(보물 262호) 석포면/ 열목어서식지(천연기념물 74호)

관광지/ 청량산도립공원 청량사 오전약수 각화사 태백산사고지 청옥산자연휴양림

특산물/ 송이버섯 한과 복수박 고추 한약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