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대선 승리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분란에 빠져들 조짐이다. 개혁 성향의원 23명이 22일 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격 제안한 것은 새 정권 출범에 앞서 좁게는 민주당, 넓게는 정치판을 다시 짜겠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의 의도가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이다.이는 민주당 내부, 특히 기존 주류세력과의 대대적인 권력쟁투 양상으로 번질 소지가 크다. 넓게 봐서 야당의 저항을 불러 정국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들의 움직임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노 당선자의 '취임 전 신당창당' 언급을 통해 예고된 바 있다. 따라서 이날의 민주당 해체론은 노 당선자와의 교감을 거쳐 나온 산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 당선자도 이날 제주 기자간담회에서 "정당 개혁 흐름 자체를 누가 막고 말리고 해서 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속도와 절차가 조절됐으면 좋겠다"는 노 당선자의 말에 비춰 보면 개혁성향 의원들이 발표 시기와 주장의 강도 면에서는 '오버'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발전적 해체론은 내용면에서 당 지도부와 동교동계,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인사 등에 대한 인적 청산과 제도 개혁을 담고 있다. 이 '양날의 칼'로 민주당 변혁과 개혁세력 통합을 통한 전국적 신당 창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2월 취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기반 확대, 길게는 2004년 17대 총선을 겨냥한 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이 대선이 끝난 지 불과 사흘 만에 당 해체라는 극단적인 수를 두고 나선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 당선자가 취임 전 당에 있을 때 그의 정치적 무게를 십분 활용해 추진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노 당선자가 취임해 청와대에 들어가면 당정 분리 원칙 때문에 당무에 간여할 수 있는 폭이 지금보다 좁아진다. 1997년 DJ가 측근들의 취임전 정계개편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과적으로 별 잡음 없이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점도 감안했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흔들기를 겸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구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인적 청산 대상으로 거론된 당 중진, 의원들의 반발로 당 내홍이 불가피하다. 또 개혁세력 결집 시도는 자칫 야당으로부터 역풍을 불러 일으켜 여야 관계를 극한 대치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개혁파들이 현 정권의 부패와 실정을 지적한 점은 청와대와의 마찰 또는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