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파스투로 지음·강주헌 옮김 이마고 발행·9,800원줄무늬 셔츠와 스카프,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의 줄무늬 로고, 운동회장에 펄럭이는 만국기 속의 수많은 줄무늬들…. 이처럼 흔하디 흔한 줄무늬가 유럽에서 한때 '악마의 무늬'로 배척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중세 문장학(紋章學)의 대가인 미셸 파스투로(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학교 객원교수)는 1991년에 펴낸 이 책에서 시대에 따라 이미지 변신을 거듭해온 줄무늬의 역사를 풍부한 예를 들어 흥미롭게 풀어낸다.
13세기 중반 십자군 원정에서 귀환한 루이 9세를 따라 파리에 입성한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줄무늬 망토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 됐다. 중세 독일 법령은 창녀 망나니 어릿광대 집시 등 천민이나 이교들에게 '배척'의 표시로 줄무늬 옷을 입도록 강제했다. 저자는 '줄무늬=악마의 무늬'란 등식의 근원을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레위기)는 성경 귀절과 함께 다양함을 불순하고 공격적이고 비도덕적인 것과 동일시한 중세인들의 의식 구조에서 찾는다.
근대에 접어들어 그 이전까지 대세를 이룬 가로줄 대신 세로줄무늬가 늘고 색상, 줄의 폭 등이 다양화하면서 줄무늬는 악마의 이미지를 벗고 '낭만의 무늬'로 거듭난다. 나아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구체제에 맞선 새 사상의 상징물이 된다. 그러나 줄무늬로 된 죄수복에서 드러나듯 줄무늬에 덧씌워진 배척의 기호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줄무늬의 이미지는 더욱 다양해져 젊음과 건강(해변을 메운 수영복과 파라솔) 또는 즐거움과 역동성(어린이, 어릿광대의 옷), 때론 경고의 상징(횡단보도 정지선)으로 쓰인다.
저자는 줄무늬의 역사가 이미지의 역사상 전례 없이 곡절 많은 것은 그것이 자연의 기호가 아니라 문화의 산물, 즉 인간이 주변의 사물들에 새겨넣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 기호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줄무늬의 의미는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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