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가장 히트한 의상은 청바지(진·jean)이며, 진의 대명사는 '리바이스'(Levi's)다. 1847년 독일 출신의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가 금광 붐을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서 리바이스 진의 역사는 시작된다. 쉽게 닳고 해지는 작업복에 불평하는 광부들을 본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포장마차의 덮개 천과 천막천을 사용하여 바지를 만들어 '리바이의 바지'(Levi's Pants)라 해서 팔았다. 이것이 리바이스 진의 출발이었다.■ 1950∼60년대 미국의 히피문화와 반항적 청년문화를 상징하며 리바이스 진은 전세계로 확산됐다. 1984년 카우보이들이 입어 너덜너덜해진 1917년 제품을 복사한 '리바이스 501'시리즈를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2001년 5월 미국 네바다주의 한 폐광에서 발견된 청바지가 경매에 부쳐져 4만6,000달러에 팔렸다. 1880년대 제품인 이 청바지를 사들인 리바이스사는 이를 복제한 '네바다 진' 500장을 만들어 장당 400달러에 팔았다. 이렇듯 리바이스 진은 아직도 세계인에게는 청바지의 명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 그러나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리바이스사는 경영난에 빠졌다. 1998년부터 연 3년간 매출이 감소, 끝내 북미지역에 있는 공장의 절반 가량을 폐쇄하는 등 대대적인 감량경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리바이스 진이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청바지 업계에 등장한 패션 진과, 랩 문화와 더불어 유행한 헐렁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모델만을 고집한 탓이다. 리바이스 진이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입는 청바지'로 낙인 찍힌 것이다.
■ 19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에 '리바이스의 실패'를 곱씹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국회의석의 절대 과반수를 차지한 거대야당이 현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실패한 것은 젊은 세대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나라당은 '나의 당'이 아니라 '아버지의 당'이었던 것이다.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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