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태학사 발행)은 조선시대 의술과 농업기술의 발전, 인구를 분석함으로써 조선의 지배 이념인 유교의 가치를 복원한 의미깊은 저작이다."흔히들 유교를 사회발전의 걸림돌로 보는데 조선을 발전시킨 원동력은 유교 이념에서 나왔습니다."
이 교수가 이 같은 연구에 착안한 것은 대학원생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유교가 나라를 망하게 한 사상이라며 더욱 배척을 받았다. 이 교수는 이 같은 통념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우리 사상을 깎아 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다. 유교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상이라면 조선 500년을 어떻게 이어왔겠는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그는 조선의 신흥 사대부들이 유교의 생생지덕(生生之德) 이념 구현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생명이 있는 것이 잘 살도록 하겠다'는 이 이념은 곧 백성이 잘 먹고 편히 살도록 하자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는 농업기술의 개발 및 보급과 인구 증대로 나타났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인구 증대를 농업생산성 향상의 중요 요소로 생각했다. 조선 초기에는 유의(儒醫)라는, 직접 처방과 시술을 하는 사대부까지 있었다. 그 같은 이념은 세종때 농서 '농사직설'과 의서 '향약집성방'의 편찬으로 보편화한다.
그 결과 인구 즉 농업노동력은 증가했고 농경지는 구릉에서 저평지(低平地)로 확대되고 수리기술도 크게 향상돼 농업생산력이 올라간다. 조선 유교는 후기에 이르면 상공업 진흥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국제교역이 부진하고 새로운 자본 축적의 길이 제한돼 있었지만 고종은 서양 기계문명의 실체를 보면서 상공업을 일으키겠다는 선언을 할 정도였다.
이 교수는 유교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를 통한 사회분석이라는 사회과학적인 방식을 시도했다. "고려시대 묘지명 260여개를 분석해보니 고려 중기까지는 소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지만 고려 말에는 현격히 떨어집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런 현상이 의술과 농업생산성 발달 덕분인 것으로 파악하고 생생지덕의 이념 구현을 국가정책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케 됩니다." 이 교수는 "유교가 완벽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그렇지만 유교를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은 우리 역사의 일부를 통째로 들어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사회사 연구에서 독보적인 길을 걸어온 이 교수는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반출이 강탈이며 을미조약과 정미7조약이 국제법상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약력 1943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사학과, 동 대학원 석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1977∼) 진단학회 회장 역임 저서 '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발달' '한국사회사연구' '고종시대의 재조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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