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출판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제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에는 수준 높은 도서들이 대거 출품됐다.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하지만 책은 변함없이 우리 문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최상급의 지표이다. 좋은 책과 그 지은이에 대한 권위 있는 시상으로 한 해 출판의 성과를 점검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비단 출판계의 경사일뿐만 아니라, 독자들과 우리 문화계가 함께 누려야 할 흥겨운 잔치이다.올해는 인문서와 교양·예술서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우수한 번역물이 많았지만 국내 저작이 상대적으로 부진해 안타까웠다. 자연과학 부문 저작상 수상작을 내지 못한 것도 아쉽다.
김호동 교수의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은 동방 기독교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저작으로 출간되자마자 주목을 받았던 역작이다. 이 책을 통해 로마 중심의 서방 기독교만 알고 있던 독자들은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초원에서 1,000년 간 생명을 이어온 동방 기독교의 고난에 찬 역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진 교수의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은 조선 중농정책의 사상적 근거와 성과를 통해 유교가 사회 발전에 적지 않게 공헌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인구 통계를 활용, 고려말 조선초 사회를 분석한 것은 방법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1, 2'는 한 방송인의 집념이 녹아있는 값진 책이다. 최상일 MBC PD는 오랫동안 전국의 민요를 채집해서 방송해 왔는데 이 책은 방송과는 별도로, 현장에서 부르는 우리 노래와 그 민요를 부르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각 분야 출판상 수상작도 알찼다. 기획, 편집, 사진, 장정 등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높은 수준을 보인 책이 적지 않았는데 우리 출판의 선진화를 입증해주는 결과이다. 심사에 많은 애를 먹었지만 마음만은 흐뭇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좋은 책들이 치열한 경합 끝에 탈락한 것은 무척 아쉽다. 특히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쉬운 글쓰기와 시원한 편집으로 독자에게 다가간 책들은 지식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더라도 학문적 깊이가 있는 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계속 이어져 두 부류의 책이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출판문화 전체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조동일(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박명진(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동철(용인대 교양과정부 교수) 임석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저작상 본심 진출 도서
깊이와 넓이 4막16장(김용석·휴머니스트)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홍성욱·들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김상환·창작과 비평사)
렌투스 양식의 미술(권영필·사계절)
야생초 편지(황대권·도솔)
완당평전(유홍준·학고재)
이슬람문명(정수일·창작과 비평사)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진덕규·지식산업사)
한국현대문학사(권영민·민음사)
한반도 평화보고서(박건영 등·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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