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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증오에서 삶으로 / "죄수에게도 인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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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증오에서 삶으로 / "죄수에게도 인권은 있다"

입력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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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모리스 지음·한택수 옮김 궁리 발행·1만2,000원최근 한국에서도 교도소 내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 배상 판결이 나오곤 한다. 재소자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는 증거다. 1970, 80년대 인권 선진국인 프랑스의 사정도 과거 우리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범죄자에 대한 알몸수색이나 교도관의 구타, 열악한 교도소 시설 등은 죄수가 마땅히 받아야 할 천형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88년 미테랑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사형제 폐지를 실천에 옮기면서 교도행정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로 손꼽히던 중죄인 수감소가 폐쇄되고 면회실이 개선됐다.

77년부터 2000년까지 살인죄로 옥중 생활을 했던 프랑스인 필리프 모리스(45·사진)의 자전적 수기 '증오에서 삶으로'는 프랑스 교도소에서 경험한 인권 침해와 잘못된 교도행정, 나아가 죄수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가 복역 중 대학 입시를 통과하고 중세 역사를 전공, 95년 박사 학위를 딴 뒤 프랑스 역사학계의 석방 운동으로 출소한 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을 끄는 책이다. 모리스는 현재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스무 살 때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던 중 형의 탈옥을 도우면서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다. 차량 절도로 수감된 파리 상테 감옥의 교도관들로부터 이유없이 몰매를 당한 그는 탈옥에 이은 도주, 총격전, 경찰관 살인 등 연쇄 범죄에 빠져들고 결국 붙잡혀 사형을 선고 받는다.

교도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몸수색을 하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음식에다 침을 뱉는 등 악의적 행동을 일삼는다. "몸수색은 일종의 강간이오.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포기하게 만들고 성기를 내놓게 하는 것은 모욕이오. 내가 당신을 내 앞에서 억지로 홀딱 벗게 했다면 당신 기분은 어떻겠소?" "그것은 다르지. 나는 옥살이할 짓은 안 했거든." 모리스의 항변에 돌아온 것은 '죄수의 인권은 보호 받을 가치가 없다'는 차가운 대답이었다.

학문을 통해 자아를 정립해가면서 교도 행정에 대한 분노를 삭였던 모리스, 그의 시선으로 되돌아본 교도소는 모순 투성이였다. 교도소 내의 작업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고 비위생적인 감방은 어쩌면 고의로 죄수들에게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해 방치된 것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범죄에 대한 회개를 잊지 않으면서 죄수들의 인권을 강조하는 이유도 설득력이 있다. "개인의 책임은 엄연히 존재하고, 결코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법조체계는 집단 책임은 무시하고 개인 책임만을 문제삼는다… 범죄는 그들 자신이 선택한 삶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선택의 폭이 얼마만큼 있었는가." 그리고 덧붙인다.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정치에 대한 식견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나는 바람직한 정치투쟁을 통해 이렇게 내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가라앉힐 수 있었을 것이다."

철없는 젊은이에서 지성인으로 변신해간 한 사형수의 삶을 담은 극적인 수기이자, 국내에서도 공론화한 사형제도 폐지, 재소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계기를 주는 책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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