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스 클라센 등 지음·김진옥 옮김 현실문화연구 발행·1만2,000원벵골만의 안다만 제도에서는 철 따라 피는 꽃 향기로 시간의 흐름을 읽어낸다. 에티오피아의 다씨네치 부족은 건기와 우기의 구분을 냄새로 안다. 건기가 되면 풀은 말라 죽고 과일은 농익어 썩으며 들판은 불타지만, 우기가 돌아오면 새 풀과 꽃이 자라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로 들판이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에서 실종된, 이른바 향기력(香氣曆)의 세계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콘스탄스 클라센과 콘코디아대 교수 데이비드 하위즈, 앤소니 시노트가 펴낸 이 책은 근대를 '후각적 침묵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냄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서구와 비서구라는 지역적 차이, 시대적 차이에 따라 냄새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미시사적으로 보여준다.
냄새는 사회적이다. 도시인이 퇴비 썩는 냄새를 참을 수 없어 한다면, 농부에게는 풍족한 거름을 만들어주는 구수한 냄새일 수 있다. 향기인가 악취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 문화 시대에 따라 다르며, 냄새는 그 사회의 규범에 따라 순서 매겨지고 분류되며 억압되거나 장려된다는 것이다.
냄새는 또한 계급과 계층의 위계가 형성되는 데 근본을 이룬다. 나치가 유태인들이 악취를 풍긴다고 믿었듯이 사람을 차별하면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말이 바로 냄새와 관련된 표현이다.
저자들은 위생학이 발전하면서 향기를 감정과 관능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냄새라는 감각을 억압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비서구권에서 냄새가 가졌던 독특한 기능들을 다양한 예화와 함께 소개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냄새가 새롭게 복원되면서 후각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행로를 살펴보고 있다.
/김영화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