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일 밤 전화통화를 갖고 노 당선자의 취임 이전에 양측의 고위 인사들을 교환 방문토록 한다는 데 합의한 것은 양측간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조기에 가동된다는 의미다.노 당선자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노 당선자의 취임 이후에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양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음에도 그 이전에 고위급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양측이 조기 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측이 대화 채널을 조기 가동키로 한 것은 북한 핵 문제 등 시급한 현안 문제 협의와 관련해 서로의 입장과 정책 방향을 노 당선자의 취임 이전에라도 사전 조율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경쟁 후보로부터 대외 관계에서의 불안정성이 지적돼 왔고 한미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주려 한다는 일부의 오해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이 북한 핵 문제 등에 있어서 지나치게 강공책을 쓰고 있다는 한국 내의 일부 비판적 시각에 대해 노 당선자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봐야 한다.
노 당선자의 취임 이전에 이루어질 양측의 고위급 대화 채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가동될지는 현재로서는 속단키 어렵다.
다만 노 당선자가 차기 정권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으로 발탁할 인사를 대화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양측의 대화는 사실상 실질적인 정책 조율의 수준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당선자측은 현 정부의 외교부 관리를 미국에 파견될 고위인사로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이 노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한미동맹 관계의 강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은 노 당선자에 대한 관심과 예우로도 해석된다.
노 당선자는 아직 한번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고 대선 과정에서도 "사진 찍기 위해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 미국 입장에서 보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는 양측의 대화 기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부시 미 대통령이 노 당선자에게 대화 파트너로서의 신뢰의 표시를 먼저 전해 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이와 관련, 이날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국민감정이 크게 표출된 것 이외에는 한미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구는 없다"면서 "한미관계는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대미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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