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투표개시를 불과 7시간 앞둔 18일 밤 11시께.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순간 전 사이버 공간이 출렁였다.순식간에 수만 건의 글이 언론사와 정당, 시민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을 도배했다. 네티즌들의 발 빠른 대응은 19일 선거 당일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중적인 투표참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노사모 회원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 수천여명이 19일 오후 6시 광화문에 집결해 '길거리 개표응원'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 '번개 통신' 덕분이었다.
■정치문화 지형 바꿔
이번 대선을 통해 사이버 유권자 운동은 새로운 정치참여 방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400여개 시민단체 모임인 '2002대선유권자연대'의 투표참여 캠페인이 대표적인 형태. 활발한 온라인 토론은 정책선거로 유도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또 특정후보 편들기 경향을 보인 일부 보수언론에 맞서 토론방과 게시판 등을 넘나들며 사이버 반대운동을 펴 나갔다.
대선유권자연대 김박태식(金朴泰植) 간사는 "영국 노동자들의 선술집 토론이 노동당의 뿌리가 됐듯 사이버 공간이 우리 한국 정치문화의 지형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김진홍(金鎭洪·신문방송학) 교수도 "이번 선거결과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출한 젊은 네티즌들이 일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시도를 꺾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불법선거 감시에도 위력
네티즌들은 불법 선거운동 대처에서도 경찰 선관위 등 '오프라인' 단속반보다 한발 빨랐다. 차상호(車相昊) 노사모 회장은 "불법선거운동 사례가 게시판에 오르면 누구 지시도 없이 네티즌들이 '5분 대기조'처럼 현장에 출동하기 때문에 늘 선관위 단속반보다 앞서 갔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이 19일 새벽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노-정 분열'을 알리는 대량의 불법벽보를 자체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막판 투표율 높이기 운동까지
네티즌들의 위력은 막판 '투표율 끌어 올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오전 투표율이 저조하자 사이버공간에는 '게릴라 통신'이 숨가쁘게 작동했다. '1인당 10통화씩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도 발송하자는 자율지침'은 온라인을 타고 번져갔다.
실제로 미디어리서치 김지연(金知演) 사회조사실 팀장은 "출구조사 결과 50∼60대의 3분의 2가 오전에 투표를 한 반면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은 절반 이상이 오후 1시 이후 투표를 했다"며 "젊은 층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네티즌들의 막판 투표독려 운동이 크게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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