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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신비와 빈곤… "그런 인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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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신비와 빈곤… "그런 인도는 없다"

입력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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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지음 푸른역사 발행 9,800원"그런 인도는 없다." 인도 근대사를 전공한 이옥순(47·숭실대 강사)씨는 잘라 말한다. 가난하고 불결하고 열등한 나라, 신비롭고 그립고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인도'라는 단어를 만날 때 떠올리는 이런 이미지는 조작된 것이라고 이씨는 주장한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박제한 인도와 우리나라가 만들어낸 인도 신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정리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의 눈에 비친 야만스러운 인도는 영국의 지배가 빚어낸 환상이다.

1870년대에서 1920년대 초반까지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영국의 추리소설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도 그때 쓰여졌다. 코난 도일이 보기에 인도라는 땅은 '적의 나라'였으며 명탐정이 붙잡는 범인은 대개 영국이 아닌 다른 대륙 출신의 유색인이고 지리적으로 인도와 관련이 많았다.

'정글 북'의 작가 키플링은 인도를 어둡고 불안한 곳으로 묘사했고, '소공녀'의 작가 프란시스 버넷은 인도를 질병이 만연한 땅으로 그렸다.

인쇄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작가들이 생산해낸 인도 이미지는 널리 전파됐다.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이런 책들을 통해 세기가 바뀐 오늘날에도 독자들은 '만들어진 인도'를 무방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우리 작가들에 대한 비판은 좀더 날카롭다. 강석경씨가 소설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에서 그린 인도에는 인도인이 없고 그저 야만인만 있고, 송기원씨의 소설 '안으로의 여행'에는 영국인처럼 아웃사이더의 환멸이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소설에 나오는 인도는 더러움과 빈곤이 가득할 뿐, 즐거운 일이나 사람다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소설에서 인도는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내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도망가는 곳이라고 이씨는 해석한다. 인도의 하층민은 류시화씨의 산문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은 사람들로,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가난해도 궁기를 풍기지 않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개념이다.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한 동양의 이미지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을 동양도 무의식 중에 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런 인도가 없다면 진짜 인도는 어떤 모습일까. 당혹스럽게도 그 답은 명료하지 않다.

서양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진정한 인도를 발견하기 위해 전통과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부 인도인의 주장은 현재 인도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나마 순수한 과거는 없으며 현재에 의해 조작되고 재해석되는 과거가 있을 뿐이라고 저자는 토로한다.

이씨는 서양의 독무대가 아닌 '서양과 비서양'이 모두 참여하는 세상을 만들어 지배자의 눈이 아닌 동료의 시선으로 동양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진짜 인도'를 짚으려면 사고의 틀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런 인도는 없다, 그렇다면?"이라는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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