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지음 한겨레신문사 발행·9,000원"단호하지 않을 때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일상 속에서 무뎌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악역의 칼날을 일상적으로 벼리지 않으면 안된다." 일상적인 것은 과거를 잊게 한다. 기쁨도 슬픔도 상처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한국 사회의 일상은 더욱 그렇다. 저항의 팔을 꺾도록,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길들인다. 과거의 잘못은 지나간 것이어서 관대할 수 있고, 현재의 잘못은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용납하는 착한 사람으로 만든다.
남민전 사건으로 파리에서 20여년을 살았던 홍세화(55·사진)씨는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착함'이라는 것이 사회의 무딘 일상에서 빚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나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칼럼 모음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사회귀족'에 맞서는 악역을 맞는다. 홍씨가 가리키는 '사회귀족'은 이른바 '사회명사'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착하게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선망하기까지 하는 사회 귀족을 홍씨는 맹렬하게 공격한다. 모두가 주인이어야 할 '민주공화국'에서 실질적인 주인으로 군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일단 반열에 오르면 자본과 인맥이 쌓여 결코 몰락하지 않고 악습을 되풀이하는 세력이 된다는 것, 일상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해야 할 과거에 등을 돌린다는 것을 조목조목 들춰낸다.
홍씨가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이 사회귀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사회귀족을 지지하거나 침묵하는 지식인과 극우 언론은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홍씨는 악역을 자처하면서 가차없이 공격의 칼날을 휘두른다.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입을 다문 지식인은 아가리를 열라"고 질타하고, "극우 언론이 교묘하게 헤게모니를 주입하는 전략에 속지 말라"고 당부한다.
파리의 이방인에게 한국 사회의 일상은 절대로 봐주지 말아야 할 적이다. 일찍이 자신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똘레랑스(관대)'를 꼽았던 그이다. 어째서 이토록 가혹하리만치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는가에 대해 홍씨는 또렷하게 답한다. "똘레랑스의 온화함은 앵똘레랑스에 대한 앵똘레랑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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