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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대]연쇄대담 (1)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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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대]연쇄대담 (1)정치

입력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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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당선으로 우리 정치사의 한 시대가 끝을 맺었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새 시대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정치, 통일외교, 경제 및 사회 분야 전문가들의 연쇄대담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과제를 진단해본다./편집자 주

손 호 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 청 시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노무현 당선의 의미

안청시 교수=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조용한 혁명'이었고, 주역은 젊은 세대였습니다. '영 파워'가 기존 정치의 주요 변수였던 계급과 지역을 대체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올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리더십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불확실한 것이지요.

손호철 교수= 조용한 혁명이었다는 데 동의합니다. 프랑스의 '68혁명'(1968년 프랑스의 반 베트남 전 시위로 촉발돼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젊은이들의 반 권위주의 운동)과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이제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3김 정치'의 종식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민주 투사였지만 사실상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반사적 대립물'이었습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도 3김 정치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대여투쟁을 했지만 결국은 이들과 동일시되고, 반민주적 이미지를 남긴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들 모두 한꺼번에 '낡은 정치'로 몰려 날아간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가 이제야 종말을 본 셈이지요. 그동안 억압돼온 것들이 김대중 정치의 실패와 인구학적 변화 등과 맞물려 압축 폭발해 단번에 세대교체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중간단계를 생략한 이 같은 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워 우려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안= 그렇습니다. 국가가 주도한 발전 모델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서구는 계급·지역주의 갈등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와 달리 모든게 압축돼 있다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발주의 정치의 종언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 모델을 제시해야 완결됩니다. 노무현 정권이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계화에 적응하면서 이와 같은 보편적 국가발전과 정책 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손= 노무현 정부의 탄생은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정당의 퇴조입니다. 거대 공룡정당인 한나라당과 동원 정치는 새로운 감성의 정치, 이미지의 정치에 압도됐습니다. 노 당선자는 집권당인 민주당의 후보였지만 선거전 내내 이 점이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세계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서구 어디에서도 인터넷이 이처럼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없었습니다. 분자화, 개체화한 개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조직화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70년대 유신세대와 80년대 광주세대 등의 정치적 의식화가 이뤄졌습니다. 5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기존 거대 언론매체에 의존한 반면, 젊은 층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었던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

안= 앞서 지적했듯이, 노 후보의 당선은 한국의 독특한 '비서구형 민주화'의 성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구모델과 다른 정치발전에 대한 시도는 남미에서 실험됐고, 공산주의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노 후보의 선거운동은 단순한 이회창 압도가 아니라 민주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동화시키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모두가 변혁 세력이고 '새로운 시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긴 것입니다. 영 파워의 '뉴 시티즌십'(새로운 시민권)이라고 할까요. 한나라당은 선거전을 보혁 구도로, 전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끌고 가는 듯했으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느새 노무현 지지가 대한민국 지지라는 인식이 깔려버렸습니다. 그 만큼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클 것입니다.

손= 이번 선거는 내용적으로는 세대혁명적 측면이 강했지만, 전근대적 지역구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물론 젊은 층 사이에서 지역 변수가 약화한 게 눈에 띄었지만, 여전히 심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혁대결도 변형된 성격을 띠었습니다. 솔직히 이 후보를 보수, 노 당선자를 혁신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나자 젊은 층 득표를 위해 색깔을 조절했습니다. 민노당이 제도권에 들어오자 노 후보는 보수성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보혁이 아니라, 개혁 대 수구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안 = 기성 정당이나 정치적 리더십은 '새로운 시민'에게 정체성을 동일시할 수 있는 준거를 주지 못했습니다. 국민경선제에 대한 선호나 노사모 운동, 거리유세에서의 이벤트적 퍼포먼스 결합 등에서 보듯 이들은 정치적으로 새로운 동일시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혁신이 반공 이념으로 국내 정치의 틀에서 공존할 기회가 없었고, 건강한 보수와 혁신 정당이 성장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 출발의 첫 기회를 빼앗긴 셈입니다. 지금까지는 독재와 반 독재, 영남과 호남 등의 대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정치구도는 더 이상 새 시민의 희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제대로만 담아 낸다면 앞으로 지역구도를 넘을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정치적 과제

손 =노 당선자는 우리 사회에서 이중적인 의미에서 비주류입니다. 학력 등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제도권 정치에서도 '원칙주의자 노무현'이란 말처럼 주류에 도전했고, 민주당에서도 비주류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된 것은 혁명적인 일인데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열렸고 보다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 = 노 당선자의 성장 배경이나 정치 과정, 조직 운영 스타일을 보면 상당히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사회 다수인 서민층이나 젊은 세대와 감각적으로 동화, 동조할 수 있는 배경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는 당 밖에서 커서 당을 장악한 사람입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민주당은 그늘에 숨기고 자신을 앞세웠습니다. 당과 거리를 뒀던 현상을 어떻게 잘 수습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정권은 또 소수 정권입니다. 2개월 동안 정권 인수를 착실하게 준비해 1, 2년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전략적으로 어떻게 할지 불확실합니다.

당선시킨 사람과 인수를 준비하는 사람, 정권에 참여하는 사람이 동일인이 되면 실패합니다. 민주화 투사가 민주주의 정치를 잘 한다고 할 수 없고, 당선 시킨 조직이 반드시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비주류가 주류의 자리에 들어간 것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정치라든지 대중 호소 정치 같은 것을 하면 반발과 저항을 자아낼 수도 있습니다.

손 = 문민 정부나 현 정부의 사례가 보여주듯 자기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개혁은 실패합니다. 인적 청산 등 먼저 과감하게 자기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되 개혁독재의 유혹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이 옳으면 수단 방법은 괜찮다는 식의 유혹이 실패의 큰 원인입니다. 소수정권 한계를 내세워 사정 등으로 의원 빼오기를 한다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안 = 구체적으로 정부 효율성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행정부가 아직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과 인맥에 싸여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사람을 넓게 찾아야 합니다. 당선자를 반대하는 사람 속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선거법과 헌법개정문제 입니다. 길어도 1년 반 정도의 시간밖에 없는 데 어려운 국회 환경에서 해야 합니다. 선거법 개정 시 정치자금 문제도 나올 것입니다.

손 = 우리 정치의 문제는 크게 부정부패, 사당정치와 제왕적 대통령, 지역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한계 등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아주 급진적으로 추진했지만 민주개혁은 머뭇거렸습니다. 정말 양심수가 없는 정권을 만들고 국가보안법부터 민주주의적 문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당정치와 제왕적 대통령 문제는 개헌도 있지만 먼저 행정부 내 권한 분산 과 삼권 분립을 실질화해야 합니다. 민주당부터 과감한 인적 개혁과 청산으로 정당 민주화에 나서야 합니다. 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정당'이라고 했는데 그런 식의 발상, 사당화의 유혹을 벗어나야 합니다.

안 = 무엇보다 정치분야에서 당선자의 가장 큰 과제는 정치 불신의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지지층의 자발적인 선거운동, 그리고 당선이라는 성공적 결과로 볼 때 신뢰가 회복될 기회가 왔습니다. 당선자는 긍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상천외한 발상보다는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바탕으로 협조를 구하고, 사람을 쓰고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정리=이동준기자 djlee@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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