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21세기를 여는 한국 정치의 화두로 개혁을 선택했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선출된 것은 이제 우리 정치도 낡은 틀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여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국민은 현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를 약속한 노 대통령 당선자를 선택한 것이다. 거꾸로 국회의석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패한 것은 안정의 기치로만은 급변하는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유권자들의 판단 때문이다.우선 우리는 새로운 정치의 기수가 된 노 대통령 당선자에게 무한한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역경을 이겨낸 그의 인간승리에 아울러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앞으로 노 당선자가 국정운영에 있어서 자신이 선거과정에서 내건 공약을 실천하는데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끝까지 선전을 한 이회창 후보를 비롯해 모든 대선 후보들과 각 정당의 선거 운동원, 그리고 공정선거를 위해 애쓴 모든 사람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의 승자와 패자가 모두 결과에 승복하고 함께 새 출발에 나선다면 승자와 패자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음을 다같이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21세기의 첫 대통령을 뽑는 행사가 아무런 불상사 없이, 그것도 정치문화의 성숙과 발전을 예고하는 가운데 무사히 치러졌다는 점에 적지 않은 자부심을 느낀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청중동원과 물량공세, 금품살포 등의 고질적인 악습이 자취를 감추고 미디어 중심의 새로운 선거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3김 시대'를 보내고 새 시대를 여는 길목에서 정말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선거과정에서 폭로 비방 흑색선전 등으로 대표되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이 유권자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은 앞으로 우리 정치가 정책대결이라는, 포지티브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물론 일부에서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재연되기도 했지만, 정치개혁에 있어서도 어찌 첫술에 배 부르기를 바라랴. 일단 '돈 선거'와 '조직 선거'의 기세가 꺾인 것만으로도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의 쪽으로 한층 다가선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선진정치를 향한 '조용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당의 후보선출에서부터 이날의 선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무언의 질책으로써 한단계 성숙한 차원으로 정치권을 끌어올린 우리 국민의 위대함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그러나 이날의 선거결과는 승리의 영광을 음미하는 잠시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노 당선자 앞에는 무거운 책무가 놓여 있다. 지난 15대 대선에 이어 또다시 근소한 표 차이로 선거결과가 나타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반증이다. 더욱이 과거 '3김 시대'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지역갈등 구도가 '3김 씨'가 선거의 뒷전으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이전의 선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의 갈등구도가 새롭게 나타남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갈등구도를 다변화시켰다.
현 시점의 한국 사회가 민족의 명운(命運)이 걸린 난제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에 이렇듯 갈등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자칫 정치·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노 당선자는 자신이 출마의 첫번째 변으로 내세웠던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최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노 당선자의 이 같은 노력에 선거의 승자와 패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참해야만 진정한 정치발전이 이룩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노 당선자의 앞에는 당장 북한 핵 문제로 점차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풀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내년 2월25일 취임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대통령 당선자의 신분일 뿐이지만, 앞으로 67일간 노 대통령 당선자는 '예비 대통령'이자 '사실상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난 1997년 대선이 끝난 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IMF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미국과 일본 등과 의견조율에 나서야 하며 나아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솔직한 대화의 자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정치권을 비롯, 국민 전체가 차분해질 것을 당부하고 싶다. 애증이 드러나기 마련인 선거과정에서 표출된 감정을 가급적 서둘러 추스르고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높았던 목소리의 톤도 한단계 낮추도록 하자. 정치권은 빠른 시간 내에 국회를 열어 새 정부 출범 이전에 필요한 입법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 정부는 노 대통령 당선자가 조속히 국정을 파악해 단절없는 국가운영이 가능하도록 정권 인수인계 작업에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적 논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평상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를 잘 치르는 것 못지않게 뒷마무리 역시 잘 해야 한다. 그래야만 '멋진 선거'가 완성되는 것이고 정치개혁이 이룩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번 선거의 승자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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