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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당선자 부인 권양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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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당선자 부인 권양숙씨

입력
200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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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중퇴 또순이가 영부인이 됐다."19일 밤 노무현(盧武鉉) 16대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 권양숙(權良淑)씨는 유세 때 모습 그대로의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민주당사 안팎에 모인 남편의 지지자들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권씨가 청와대의 새 안주인이 되기까지 겪은 역정은 남편 노무현 당선자 이상으로 파란만장하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좌익의 딸'로 손가락질 당하며 뼈아픈 가난의 고통도 겪은 권씨의 삶에는 굴곡의 현대사를 견뎌 온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1947년 경남 마산시 진전면의 농가에서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권씨는 지금도 아버지 권오석(權五石·22년생·71년 사망)씨의 얘기는 가급적 피하고 싶어한다. 오석씨는 1950년 9월5일 새벽 3시 남로당이 9명의 양민을 학살할 때 주변을 감시했다는 이유로 1959년 구속돼 1971년 옥사했다. 권씨 주변에서는 "당시 그 분은 두 눈이 모두 먼 상태였다. 감시했다는 것은 누명을 쓴 것"이라며 부역사실을 부인해 왔다.

진실은 아직도 미궁이지만 이 사건은 노 당선자가 국민경선에 나서면서 경쟁후보의 유효한 정치공세의 소재가 됐다. "좌익의 딸이 어떻게 영부인이 될 수 있느냐"는 것. 이 때 권씨는 그야말로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주변에 토로했다. 하지만 남편 노 당선자는 "장인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그런 대통령은 안 하겠다"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 때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남편의 사랑을 가장 감동적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옥사 후 편모슬하로 성장한 권씨는 내내 '부역자의 딸'이라는 따돌림을 받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곧잘 했던 권씨는 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에 진학했다. 그러나 공납금을 댈 수 없어 결국 1학기를 남기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권씨는 지금도 "대학교에 갈 형편도 아닌데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던 진학담당 선생님의 말을 눈물없이는 떠올리지 못한다.

이후 4년간 부산서 회사에 다니다 할아버지 병 수발차 고향마을에 돌아와 있던 권씨는 마침 군 제대 후 고시공부 중이던 동네 오빠 노 당선자의 구애를 받았다. "비록 고졸 학력이지만 평범하게 살 것 같지는 않은 고집스런 눈매만을 믿었습니다."

1973년 1월 결혼한 권씨는 남편이 사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온갖 신산을 겪었다. 이후에도 그는 노 당선자를 고비 때마다 일으켜 세워 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남편의 당선이 확정된 후 권씨는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남편이 보여줬다"며 "남편이 초심을 잃지 않고 국정을 잘 운영하도록 조용히 내조하겠다"고 다시 조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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