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돌던 9일, 서울 광화문 앞 열린 시민마당에서 열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항의 단식기도회에 동참한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水耕·53) 스님을 바라보는 지인들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6월 폭염의 아스팔트 위에서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삼보일배(三步一俳·세번 걷고 한 번 절하기) 도중 탈진해 쓰러지고 한 달 뒤 경기 송추 농성장에서 폭력배의 린치를 받고 병원 신세까지 졌던 수경 스님이 또 다시 고행을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수경 스님은 올 한해 굵직한 사회적 쟁점마다 동참해 여론을 주도한 대표적인 종교인으로 손꼽힌다.그는 일반에 낯선 비폭력 시위 모델인 삼보일배를 통해 환경단체마저 발을 뺀 북한산 문제의 쟁점화에 성공했다.
명산을 훼손한 데는 스님들의 책임도 크다는 냉소와 비판 속에서도 불교계 중심의 관통도로 반대운동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불교계의 허물을 먼저 반성하고 친환경적 불교정신을 회복하자는 수경 스님의 목소리가 큰 힘이 됐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북한산 관통도로 우회노선 검토를 공약으로 내걸어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상태다.
그는 11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람사협약 당사국 회의장에서 삼보일배를 통해 새만금간척사업의 부당성을 알렸으며, 최근에는 원불교와 함께 전남 영광 핵폐기물 처분장 설치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30년 간 선방 수좌(首座·수행을 주로 하는 스님)로 있다 2000년 지리산댐 건설 반대 운동으로 뒤늦게 사회활동을 시작한 수경 스님은 16일 환경운동연합이 주는 제12회 녹색시민상을 받으면서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로 자리잡았다.
현재 전남 남원 실상사에 거처를 두고 있는 수경 스님은 서울 불교환경연대를 오가며 수행과 환경운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각 종교 결산
지난해 12월 31일 혜암(慧菴) 종정의 입적으로 한 해를 맞은 불교 조계종은 3월 법전(法傳) 스님을 신임 종정으로 추대했다.
올해는 종단분규 없이 평온한 한 해를 보냈으나 정대(正大) 총무원장이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옮겨가며 원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혀 연말부터 교계는 선거국면에 들어갔다.
6월 월드컵 기간 중 열린 '템플스테이',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法輪) 스님의 막사이사이상 등은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올해 교계설정 40주년을 맞은 한국 천주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교회 지도부의 대거 교체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포함하면 김옥균 서울 총대리, 나길모 인천교구장, 김창렬 제주교구장, 박정일 마산교구장이 은퇴했고 15개 교구의 절반이 넘는 8개 교구의 교구장이 바뀌었다. 특히 4월 최기산 주교의 인천교구장 착좌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들로만 주교단을 구성하게 됐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5월 한국 순교자 124명과 증거자 2명 등 126명의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를 확정해 교황청의 허가를 받은 것도 역사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개신교에서 올해는 연합과 일치 움직임이 가시적인 성과를 얻은 해였다. 한국기독교교회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제시한 통합연합기구 설립 헌의안이 9월 각 교단 총회 기간에 만장일치로 통과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통합 가능성이 현실화했다.
한기총은 김기수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KNCC는 백도웅 목사를 총무로 선출했다.
기독교장로회 소속 한상렬, 홍근수 목사는 여중생 사건 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사건을 쟁점화하고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운동을 이끌어 왔다.
또 11월 병역법 등이 개정돼 목사와 신부, 승려 말고도 타종교 성직자들이 군종(軍宗) 장교로 임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군대 내의 종교적 형평성이 크게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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