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다이어트와 함께 연초 등장했다 석 달을 넘기지 못하는 '단골 작심삼일 결심'이 바로 '가계부 쓰기'다. 그래도 새해에는 꾸준히 써보겠다고 또 한번 결심해보는데…. 가계부는 수입과 지출은 물론 가족들의 한해 살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장이다. 다음 카페 '평등을 꿈꾸는 며느리방'의 살림 20년차 베테랑 주부들이 가계부에 묻어나는 풋풋한 일년치 수다를 풀어놓았다. 본문의 이름은 모두 닉네임.
메밀꽃: 가계부는 무엇보다 쓰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아요. 삼개월이 뭐야, 한 달 못 넘기는 경우도 많은데….
blue: 결심하고 쓰기 시작한 첫 달부터 '빵꾸'가 나면 정말 신경질 나서 쓰기 싫더라구요. 게다가 적자라고 남편이 뭐라고 한마디하면 가계부는 끝이라고 봐야죠.
밥풀떼기: 저는 수입, 지출이 어긋날 때 그만두고 싶어져요.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그래서 가계부 고를 때 꼭 '기타'나 '잡비' 항목이 있는지 확인해요. 모자라는 건 그냥 '기타'라고 해서 써 넣고 나중에 혹시 남으면 거기서 쉽게 빼면 되니깐.
kaori: 사실 항목이 많으면 더 쓰기 힘들지 않아요? 대형 할인마트에서 장보면 영수증에 콩나물 하나까지 자세히 적혀 있잖아요. 그냥 영수증을 붙이면 바로 가계부가 되는데 괜히 항목이 많이 나뉘어 있으면 거기에 맞춰 적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귀찮더라구요. 카드도 쓸 필요 없이 그냥 영수증을 클립 같은걸로 모아서 붙여놔요. 결제일별로 모아두면 청구서 오기 전에 얼마가 나갈지 알게 돼서 미리 긴축재정 필요여부를 알 수 있어요. 보통 청구서 받고 나면 다음달치 다 쓰고 이미 늦은 경우가 많잖아요.
happysoon: 맞아요. 그리고 항목 중에 수도·광열비, 전기요금 이런 게 요즘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냥 '관리비'라고 한꺼번에 나오는데. 이런 건 차라리 가계부 앞이나 뒤에 몰아서 쓰고 일일 지출에는 따로 기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모아서 기록하면 사용량이 늘었나 줄었나 한 눈에 볼 수도 있구요.
밥풀떼기: 사실 꼭 필요한 항목은 교육비와 경조사비에요. 우리 나이 되면 결혼식이다 뭐다 많기 마련이거든요. 큰돈 드는 이 두 가지 항목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메밀꽃: 인터넷 가계부도 써봤는데 계산기가 필요 없이 자동으로 정리되는 건 좋더라구요. 또 요즘은 카드를 많이 쓰는데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실시간으로 입력되니깐 일을 반으로 줄일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반드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는 거죠.
밍이: 그런데 난 컴퓨터에 가계부 쓰면 다른 사람이 못 본다는 게 좋더라구요. 사실 가계부 쓰다 보면 일기 비슷하게 시도 끄적거리고 하는데 전에는 남편이 우연히 내가 써 놓은 시를 읽어서 좀 그랬거든요. 인터넷에 쓰면 비밀번호를 걸어놓을 수 있으니까 보안상 좋은 것 같아요.
blue: 남편이 가계부를 보게 될까봐 신경 쓰일 때도 있어요, 사실. 난 전에 친정에 5만원 드리기로 하고 더 넣어서 20만원 드렸거든요. 가계부에 그냥 쓰면 되는 걸 괜히 남편이 볼까봐 '용돈 5만원'이라고 그냥 쓰고 대신 2만원짜리 고기 값이 4만원이 되고, 없는 약속을 만들어 써 넣고 그랬어요.
메밀꽃: 남자들도 가계부 한 번 써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남편한테 가계부와 함께 월급 관리를 맡긴 적이 있었거든요. 정확하게 1년 쓰더니 못하겠다면서 두 손 들더라구요. 그 사이 나는 오히려 용돈 타 쓰면서 여윳돈을 장만했어요. 가사 경영이 쉽지 않고 집안일에 돈 많이 드는 걸 알아야 해요. 그래야 장보는데 따라와서 카트에다가 초콜릿, 양갱 같은 쓸데 없는 군것질거리 안 집어 넣지….
밍이: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가계부 옆에 제철음식 만드는 법 나오잖아요. 그대로 해먹기도 힘들고 그날 해먹지 않으면 다시 찾아보게 되지도 않더라구요. 그것보다 저는 '생활 토막상식'이나 도움되는 사이트, 할인 쿠폰 같은 게 더 실용적인 것 같아요.
kaori: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기가 직접 가계부를 만들어서 쓰데요. 제가 아는 한 엄마는 문서에 '표만들기'를 이용해서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건 아예 입력을 해놓고 그날그날 쓴 걸 현금과 신용카드로만 나눠서 간단하게 적어서 한 달에 한페이지로 끝내더라구요. 그렇게 하면 한달 지출이 한눈에 더 잘 들어온대요.
밥풀떼기: 다른 건 몰라도 지출규모를 파악하는 데는 가계부가 최고죠. 문제는 파악만 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꾸준히 쓰기 어렵다는 사실 같아요. 내년에는 한 번 잘 해봐요.
/김신영기자 ddalg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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