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선의 승리자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를 따돌린 조지 부시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최종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라이벌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의 코를 납작하게 한 해리스도 승자였다. 갤럽은 부시와 고어의 득표율 차이가 2%(48 대 46)라고 예측한 반면, 해리스는 0%(47 대 47)로 추정, 실제 차이(0.5%)에 아주 근접한 결론을 내렸다. 재검표와 법정 소송까지 가는 우여곡절끝에 대통령이 당선되는 박빙의 승부를 정확히 예측한 해리스의 명성이 높아졌음은 불문가지다.■ 갤럽이 고어의 예상 득표율을 실제보다 낮게 예측한 것은 전통적인 전화여론조사 방법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기존의 전화 조사에 인터넷 조사를 병행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선전화 방식에만 의존하는 여론조사의 한계와 위험성이 미 대선을 계기로 확인된 셈이다. 이듬해 열린 미 하원의 대선 여론조사 청문회가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방법에 의한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언론사에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6·13지방선거, 8·8 보궐선거에 이어 대선까지 치르는 올해만큼 여론조사기관들이 선거 특수를 누린 해도 다시 없을 것이다. 대선 후보를 낸 정당은 물론, 거의 모든 언론사가 올 초부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냐는 여론조사결과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후보 단일화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2∼3일 안에 끝내는 유선전화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000만대가 넘는 휴대폰 보급률,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의 확산으로 유선전화는 이미 낡은 통신수단이 됐는데도 여론조사 방식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예측의 정확성이 생명인 여론조사는 조사방법의 타당성과 신뢰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후보들이 오차 범위 내에서 각축하는 박빙의 승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의 공개가 금지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는 기관마다 제 각각이었다. 정당들도 아전인수격으로 유리한 여론조사만을 제시해 유권자를 헷갈리게 했다. 이제는 여론조사기관도 결과에 따라 옥석을 구분해야 할 때가 됐다. 새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여론조사기관의 우열도 가려지게 될 투표일이 밝았다.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