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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76)투표

입력
2002.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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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넘은 대한민국 시민은 오늘 조국의 제16대 대통령을 뽑는다. 신분·교육·재산·인종·신앙·성별 따위를 기준으로 삼은 자격 요건의 제한 없이 일정한 나이에 이른 시민 모두가 자신들을 대표할 공직자를 뽑는 보통선거 제도는 오늘날 대다수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보통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보편화한 제도다. 부르주아 혁명 이후에 시민 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서구 사회에서도, 오래도록 선거권은 재산과 교양을 갖춘 백인 남성들만의 몫이었다. 혁명의 물결이 유럽 전체를 휩쓸던 1848년, 영국 노동자들은 570만 명의 청원 서명과 시위·파업으로 의회를 압박하고도 선거권을 얻지 못했다. 영국 지배 계급은 차티스트라고 불리던 제 나라 노동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으로 거기 응답했을 뿐이다.197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인들은 제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없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 둘이 차례로 철권을 휘두르던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다 갇히고 고문 당하고 살해됐다. 박종철이라는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이 촉발한 전국민적 항쟁이 있고서야, 당시의 군부 정권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행사할 표 하나하나에는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에서부터 군부 정권 시절 한국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집단은 기존 정치 규칙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낡은 정치 엘리트들이다. 오늘은 휴일이다. 소풍을 가든, 데이트를 하든, 술을 마시든 우선 투표소부터 들르자. 민주공화국 시민에게 참정권은 의무적 권리다. 투표는, 법적 의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공민윤리적 의무이기는 하다.

고 종 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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