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대선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차원을 넘어 공연한 발언이나 행동이 한국의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분위기이다.백악관과 국무부 브리핑 때마다 한국 대선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나 입장을 캐기 위해 질문이 던져지지만 답변은 사실상 나오지 않는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대선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우리는 외국의 국내 정치 문제들을 논평하지 않는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미 정부의 침묵이 한국의 대선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어느 선거 때보다 이번 선거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우처 대변인은 논평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이번 한국 대선은 대단한 열전으로 관심있는 선거"라는 기자의 질문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미 정부의 한국 관련 부서들은 주한 미 대사관의 여론조사 동향과 정세 판단 등을 토대로 향후 한미 관계의 틀을 짜느라 여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여중생 사망 사건에 따른 반미 감정,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선언 등 선거를 앞두고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이 대통령 선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 정부로서도 초미의 관심사"라며 "판세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미국 정부가 더욱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이회창(李會昌) 후보든, 노무현(盧武鉉) 후보든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 돼도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대북 문제를 두고 다소의 삐걱거림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견해를 내는 한반도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한 전문가는 "누가 한국의 지도자가 되든 대북 강경책을 펴고 있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전적으로 조화를 맞추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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