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2월18일 수정주의 사회주의 이론의 제창자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82세로 작고했다. 베른슈타인을 수정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독일 사민당의 한 지도자로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주의의 전제(前提)와 사회민주당의 임무'(1899)를 비롯한 여러 글을 통해서 자본주의 붕괴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언이 그릇되었다고 비판하고, 폭력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민주적·점진적 개혁을 통해서 평등·박애·연대 같은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의 이런 예측과 주장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자본주의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귀를 기울일 만도 했다.그러나 '임박한 혁명'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한껏 고양돼 있던 사민당 내 동료들 다수에게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의 배반자로 비쳤다. 의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사회주의의 길을 주장하며 우파의 베른슈타인이 중앙파의 카를 카우츠키, 좌파의 로자 룩셈부르크 등 당내 이론가들과 벌인 이른바 수정주의 논쟁은 독일 사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논쟁에서 베른슈타인은 수세에 몰렸지만, 그 뒤 한 세기 동안 독일 사민당과 사회주의 일반이 겪어온 성쇠는 베른슈타인이 역사의 승리자임을 보여주었다.
수정주의라는 말에 담긴 경멸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는 수정된 사회주의, 곧 사회민주주의다. 정통 사회주의의 부활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불가능해 보인다. 마르크스주의는 문화 이론으로서는 앞으로 오래도록 힘을 잃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경제학으로서는 이미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고, 극적으로 재림할 것 같지도 않다.
고 종 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