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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 천년 세월 느끼다보면 일년 시름은 감쪽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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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 천년 세월 느끼다보면 일년 시름은 감쪽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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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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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온 세월의 마디. 한 해를 돌아보며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할 때이다. 고즈넉한 산사(山寺)를 찾아가보자. 고작 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소란을 떠는 인간들에게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산사는 할 이야기가 많다. 겨울 풍경에 어울리는 남쪽의 산사를 돌아본다.■운주사/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모두 해탈을 한 듯 표정이 없다. 운주사 여행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야기하는 돌부처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원래 이 절에는 1,000구의 석불과 1,000기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탑 19기, 석불 93구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국운이 일본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하룻밤 사이에 이 탑과 불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운주사는 버려진 절이었으나 1970년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등장하면서 일약 민중해방의 미륵 성지로 떠올랐다. 그 미륵신앙은 절 오른편 산 중턱에 누워있는 와불에서 비롯됐다. 키가 10m가 넘는 와불은 2구다. 운주사의 돌부처 중 표정이 가장 잘 남아있다.

천불천탑이 완성되면 미륵이 지배하는 참 민중의 세상이 오고, 운주사가 있는 천불산은 새 나라의 수도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석불이 완성되던 찰나, 일을 하기 싫은 한 동자승이 새벽닭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아침이 온 줄 알고 마지막 석불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미륵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중에는 보물로 지정된 것이 3개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보물은 제 796호인 구층석탑. 거대한 암반 위에 건립된 탑으로 옥개석의 흐름이 날렵하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 운주사의 탑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보물 제797호인 석조불감(石造佛龕)은 독특한 양식의 불상. 돌을 쌓아 정육면체 모양의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2구의 돌부처를 앉혔다. 돌부처는 서로 등을 대고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다.

석조불감 안쪽에는 보물 제798호인 원형 다층석탑이 있다. 말 그대로 둥글고 넓적한 돌을 쌓아 만들었다. 현재 6층만이 존재하는데 그 위로 몇 층이나 더 있었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운주사의 탑을 제대로 보려면 공사바위에 올라야 한다. 공사바위는 대웅전 뒤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도선국사가 공사를 감독했다는 곳이다. 바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절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터에 자리잡은 탑과 부처. 몽환적이다.

■쌍봉사/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사동마을

멀리서 바라보는 절집은 볼품이 없다. 눈에 묻혀 여염집인지 절집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갈을 깔아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실망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계단이 놓인 해탈문 안으로 들면 진귀한 보석을 만난 느낌이 든다.

쌍봉사는 송광사의 말사이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의 절집이 고작이다. 작지만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묵직한 위엄이 절 마당에 가득하다.

쌍봉사는 정확한 역사를 알기 어렵다.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스님 부도비에 '신라 신문왕 원년(839년)에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구절이 있어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양식의 대웅전이다.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지어졌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한반도에 두 개 밖에 없는 희귀한 양식이다. 1936년에 일찌감치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됐다. 그런데 단청이 유난히 짙다. 1984년 한 신도의 부주의로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86년 복원한 것이다.

대웅전을 돌아 소박한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다. 앞에는 굵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휘영청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은 붉은 단풍잎 대신 하얀 눈꽃을 피운다.

쌍봉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철감선사탑과 탑비이다. 철감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은 국보 제57호, 탑비는 보물 제170호로 지정돼 있다.

부도탑은 팔각원당형이다. 사자, 연꽃, 신장, 천인 등 돌에 새겨놓은 각종 조각이 일품이다. 그 옆으로 탑비가 있다.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고 비신은 유실됐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비신을 없애 근처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절 마당 한쪽 언덕엔 대나무숲이 있다.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선암사/ 전남 순천시 승주면 죽학리

전남 도립공원 조계산(884m)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국내에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한때 60여 동에 달했던 대가람은 전란과 화재를 거듭 겪고 20여동으로 줄었지만 그 위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제400호) 등 여러 보물을 중심으로 깊이와 아름다움이 건재하다. 산 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번화한 반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을 내뿜는다.

선암사 계곡길은 아름답다. 사하촌(寺下村) 괴목마을에서 1.5㎞ 정도 걸으면 절에 닿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길이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이 길은 자연이 스스로 빚은 수목원이다.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등 이름조차 낯선 나무가 늘어서 있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설명을 걸어놓았다.

얼마 못가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숲과 만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직립의 아름다움. 삼나무 깊은 그늘 속에 벤치가 놓여있다. 쉼터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昇仙橋). 보물로서의 기품이 당당하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았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한 조계산은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을 호령하는 산이다.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힌다. 비교적 완만한 산세에 등산로가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산행에 적합하다. 선암사-정상-굴목재-마당재-송광사의 완주코스는 약 10㎞로 4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는 능선코스는 8.2㎞다. 순천시 산림과(061)749-3512.

■남산/ 경북 경주시

절이 아니라 산이다. 그러나 산 전체가 불교 유적으로 들어차 거의 절이나 마찬가지다. 불교의 야외박물관이다.

경주 남산은 서라벌 남쪽에 우뚝 솟아있다.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에서 시내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보인다. 해발 468m의 금오산과 494m의 고위산에서 뻗어 내린 약 40여 개의 능선과 골짜기, 18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 시대에는 화랑들이 심신을 연마하는 수련장이었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신앙지로 모습을 바꾸었다. 신라시대의 예술인들과 종교인들이 산 전체에 절과 탑과 석불을 만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절터만 130여 곳이고 석불과 마애불이 100여체, 석탑과 폐탑이 71기에 이른다. 모퉁이를 돌면 부처를 만나고 한굽이를 넘으면 석불을 대한다. 물론 대부분의 불교 유적이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거대한 산의 절벽에 통째로 만들어놓은 불상이나, 음각형태로 파놓은 부처들은 그런대로 당시의 위엄을 보여준다.

남산은 경주 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이다. 주말에는 물론 평일에도 많이 오른다. 부지런히 걸으면 약 2시간 정도면 오르내릴 수 있다. 혼자 걷더라도 보아주는 부처의 눈길이 많아 외롭지 않다.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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