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의 유전자(게놈) 지도 해독을 둘러싼 각국 정부 및 과학자들의 경쟁이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될 정도로 치열하다. 작은 것을 파고 드는 유전자 연구는 우주 개척에 밀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본격화했지만 10여년 만에 21세기 인류의 가장 중요한 숙제로 부상했다. 이미 인간 게놈이 대부분 완성되는 등 약 10종의 동식물 유전자 지도가 작성됐다.■연구 과정 및 성과
인간을 비롯한 동물 게놈의 연구는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파악해 생명과 진화의 원리를 밝히는 한편 난치병 치료 등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인간 게놈 연구 프로젝트는 미국의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1990년에 시작돼 18개 국 이상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앞선 2000년 6월 초안이 작성됐으며 최종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척추 동물과 무척추 동물의 진화 과정 규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멍게의 유전자 지도가 최근 만들어졌다. 인간과 질병 관련 유전자를 90%나 공유하고 있는 쥐의 게놈은 지난해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셀레라 지노믹스에 의해 초안이 작성된 데 이어 이달 초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10월에는 말라리아 병원균과 이 병원균을 옮기는 모기의 게놈이 동시에 해독돼 말라리아 치료의 전기를 마련했다. 복어, 선충(線蟲), 과실파리 등의 동물도 유전자 지도가 작성됐다. 이들은 인간 유전자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인간 게놈 연구에 기여하게 된다. 동물 게놈 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진 동물은 인간을 포함 모두 7종이다.
식물 쪽으로는 인간의 주 식량원인 벼가 실험용 겨자인 애기장대에 이어 두번째로 해독됐다. 인디카 쌀과 자포니카 쌀의 초안이 올해 4월 발표된 데 이어 15일 중국은 인디카 쌀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18일 벼 유전자 지도 완성을 발표할 예정이다. 벼의 유전자 분석은 품종 개량을 통해 획기적인 수확 증대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돼 제2의 녹색혁명으로 불린다. 인간 게놈에서 한 발 뒤처진 중국, 일본 등 동북 아시아권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망 및 과제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고 모든 생명의 비밀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경우 약 3만 개의 유전자가 30억 개의 염기쌍에 들어 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 유전자 각각의 비밀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말라리아 병원균의 유전자 지도 분석에 참여한 영국 웰컴 트러스트 제약회사의 닐 홀 박사는 "이제 우린 과학자들에게 건초더미를 주었으며 그들은 그 속에서 바늘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전자 연구는 정보의 악용과 새로운 차별, 빈부 격차 확대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유전 정보가 공개될 경우 유전병 등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보험 가입이나 직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상당수의 게놈 연구가 상업적 목적을 가진 제약사, 생명공학 기업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유전 정보의 상업적 이용도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인간 게놈 초안 발표를 주도했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10월 개인의 게놈을 디스켓에 담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월 "개도국들이 유전자 연구 성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새 지식이 오히려 빈부국 간 보건 격차만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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