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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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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중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모신 곳이죠. 우리 땅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3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를 비롯해 영원 법흥사, 정선 정암사, 오대한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입니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의 사리와 옷을 가져와 모셔 놓았습니다. 당연히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곳에 있습니다.3년 전 이맘때 꽤 야심찬(?) 취재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묵은 1,000년을 보내고, 새 1,000년을 맞는 때였습니다. 이땅에 1,000년이 넘도록 버텨온 5개의 적멸보궁을 모두 소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뛰다시피해서 꼬박 4박5일이 걸렸죠, 경남 양산을 시작으로 계속 북쪽으로 오르는 일정이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공부한 취재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설악산 봉정암에 오를 때에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취재기자는 커다란 순례단에 끼어 산에 올랐습니다. 순례단의 대부분은 여성 노인입니다. 60~70대가 대부분입니다. 마실 가기도 힘든 다리를 끌며 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봉정암은 설악산의 8부 능선에 있습니다. 건장한 다리로도 4시간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특히 봉정암 직전의 가파른 언덕은 일면 '깔딱고개'라고 해서 산을 잘 타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난코스입니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힘들다는 기색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종교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적멸보궁을 취재하면서 느낀 가장 강렬한 것은 순례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적멸보궁에는 부처상이 없습니다.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따로 부처상을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요, 모셔져야할 수미단에는 빈 방석만 있습니다. 1,000년이 넘도록 그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다는 것.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땅에 또 한번의 갈등과 대립, 긴장을 몰고왔던 대선 잔치가 곧 끝납니다. 수십시간만 지나면 차지하는 사람과 물러나는 사람이 결정되겠죠, 하지만 누가 차지하고 누가 물러나더라도 적명보궁의 비어있는 방석을 한번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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