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TV 토론 전문가인 정치학자 새무엘 팝킨은 대통령 선거와 TV 토론의 관계를 전쟁과 종전(終戰) 협정의 그 것에 비유했다. 종전 협정이 전장에서 승패가 갈린 힘의 판도를 추인하는 것처럼, TV 토론도 유권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후보들의 이미지와 이를 토대로 결정된 판세를 확인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1960년 케네디-닉슨의 첫 TV 토론 이래 숱한 가설과 신화가 쌓였지만, 실제 TV 토론이 표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그제 저녁 대선 후보 3명의 마지막 TV 토론은 다들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앞선 토론에서 제법 뜬 권영길 후보가 그나마 재미있는 말을 더러 했지만, 어느 후보도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탁월함이나 열등함을 보이지 않았다. 언론이 TV 토론을 막바지 승부처로 표현한 것은 상투적이지만, 여론조사 발표도 없는 상황에서 민심과 판세 변화를 읽고 참고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난감해 할 건 아니다. 오히려 뒤늦게 도입한 미국적 선거 문화의 상징 TV 토론에 대해 학자들과 언론이 부추긴 환상에서 쉽게 벗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만 하다.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문물과 풍조에 쉽게 달뜨는 얄팍함이 약점이지만, 그런 만큼 미망(迷妄)에서도 빨리 깨는 학습 능력을 가진 것이 역시 강점이다. 케네디·닉슨 시대 이래 미국 사회가 미디어 선거의 허실을 분별하는데 40년 세월이 필요했다면, 우리 사회는 그 것이 가공된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벤트 쇼라는 사실을 이내 깨달은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언뜻 혼미한 선거 안팎을 관통하는 진정한 흐름과 명제를 제대로 읽는 것이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 필요하지만,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도 절실하다.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슈가 제기됐지만,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논쟁 무대를 스쳐 지나갔다. 이 때문에 후보들은 이해득실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유권자들도 진정한 이슈와 개별 후보의 특장(特長)을 분간하는 데 헷갈린 듯 하다. 멀리는 '병풍'에서 가까이는 '반미' 흐름과 북한 핵 사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유권자들의 선택을 좌우할 이슈는 되지 못한 듯 하다.
선거전 막바지 되살아 난 전통의 색깔 논쟁도 유권자들의 관심과는 멀어 보인다. '안정이냐 불안이냐', '전쟁이냐 평화냐'하는 극단적인 차별화 공방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무작정 거부감을 부를 민주노동당 후보가 그나마 TV 토론에 재미를 제공한 것이 상징하듯이,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 정도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에 없이 많은 유권자가 스스로 '부동층'(浮動層)에 남아 있는 근본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갈래 분석이 나오지만, 어느 후보도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국민적 지도자의 면모를 보이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친미와 반미 따위의 논쟁과 갈등에는 이미 익숙한 국민 앞에서 후보들은 애써 엉뚱한 다툼만 벌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3김시대'를 포함한 구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진통일 수 있다. 이럴 때 정치학자들이 주는 충고가 있다. TV 토론을 비롯한 선거전은 후보 개인의 이미지와 자질에 초점을 맞추지만, 국정은 대통령 혼자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또 선거전의 후보들은 간결하고 일관된 구호와 공약을 내세우지만, 국정은 그리 단순하고 일관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하라는 것이다.
결론은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만 뽑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후보가 대표하고 이끄는 정치 세력을 함께 선택하는 기회이며, 따라서 그 세력의 특성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이런 고려를 끝낸 채, 모두를 놀라게 할 선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