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그 아이를 면회 가서 내의를 넣어주었습니다. 차마 고개도 못드는 아이가 안쓰러워 한참을 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저 세상에 간 아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빠도 가슴 속 미움을 씻어낼 테니 너도 편히 잠들거라'라고요."올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교실살인사건'(본보 4월17일자 31면)으로 외아들 영민(가명·14)군을 잃은 김호진(金虎鎭)씨가 아들을 죽인 아이의 선처를 위해 발벗고 나서 세밑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아직도 아들의 맑은 웃음이 눈에 밟혀 가슴이 찢어진다"는 김씨는 "하지만 평생 악몽에 사로잡혀 살 그 아이도 한없이 가엾다"고 했다. "다 용서했습니다. 이젠 그 아이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라나 아들 몫까지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수업 중에 일어난 교실살인
서울 금천구의 중학교에서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것은 4월15일. 3학년 진성(가명)이가 오후 수업 중인 같은 학년 영민이반 교실문을 열고 들어와 흉기로 영민이를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진성이는 점심시간에 영민이를 포함한 몇몇이 자신의 친구를 때리는 것을 보고 격분, 집으로 달려가 흉기를 갖고 와서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분노에서 용서로
처음 사고소식에 '덜렁대던 아이가 어쩌다 다친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김씨는 병원에서 너무나 참혹한 모습으로 숨져있는 아들을 보고는 정신을 잃었다. "몇 날 며칠 치가 떨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만든 놈을 잡아다 똑같이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6월14일 법정에서 진성이를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악마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 아이가 우리 아들처럼 앳되고 선해 보였어요. 놀라고 당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저 아이가 아니라 사회가 죽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쉽지 않았다. 거리에서 또래 아이들과 마주치기만 해도 슬픔이 북받쳤고 초인종 소리에 맨발로 뛰쳐나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을 구치소에 보낸 진성이 부모님 마음도 오죽할까'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가슴 속 얼음을 녹여냈다.
■영민이를 죽인 것은 학교폭력
17일 김씨는 진성이가 2심에서 2년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낸 탄원서 때문인지 몰라도 1심 선고량의 반으로 줄었지만 김씨는 여전히 편치 않다. "이미 용서한 이상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김씨가 학교폭력에 무심한 교사나 교육당국까지 용서한 것은 아니다. 틈틈이 학교폭력 관련 세미나 등에서 강연하면서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따지고 보면 두 아이 모두 학교폭력의 희생양들이지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열심히 돕는 것이 먼저 간 아들을 위해 아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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