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거포 이경수(23)의 코트 복귀 꿈은 결국 사라졌다.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LG화재와 전격 계약한 잘못이 용서받기에는 너무 컸던 것일까. 실업 4개 구단은 극적으로 합의한 지 3일 만인 16일 드래프트 비용에 대한 이견으로 이경수가 다시 날개를 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1년을 허송세월한 이경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국외자에 머물러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처지이다. 최악의 경우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배구에 큰 손실이다.▶이경수 "잘못했다"
이경수는 드래프트 무산소식을 듣고 눈시울이 벌개진 채 경기 이천시에 있는 팀숙소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이번 만큼은 기대를 했는데 무산되자 할말을 잃었다. 더구나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실업연맹전 전국체전에 이어 28일부터 시작하는 슈퍼리그까지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17일 이천 LG체육관 숙소에서 만난 이경수는 "정말 죄송한 생각밖에 없습니다. 제 잘못으로 팬들과 구단, 배구계에 모두 폐를 끼쳤습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경수는 "하지만 당시 드래프트가 된다면 정말로 배구를 그만두고 체육교사로 진로를 수정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었고 자존심 문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코트에서 볼을 주워주던 이경수는 "복귀 준비는 완벽하게 마쳤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경수는 부산아시안게임 때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더 열심히 훈련했다. 새벽에 숙소에서 나와 청소를 시작으로 하루를 준비했고 가장 늦게까지 코트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힘에 부칠때면 시각장애인 부모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군생활 도중 폭발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아버지 이재원(58)씨와 배구선수 출신으로 공에 맞아 실명한 어머니 김둘연(51)씨는 이경수에게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가끔 경기장을 찾곤하던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뛰고 또 뛰었던 그였다. 올 슈퍼리그에서 명예회복을 벼르며 대전집에 잘 내려가지도 않았다. 부모에게 자랑스런 아들로 다시 서기위해 한시라도 더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경수는 "사실 대학 때까지 위궤양, 빈혈 등에 시달릴 만큼 몸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는 체력도 좋아졌다. 남은 것은 실전감각 뿐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이경수의 미래
술을 전혀 못하는 이경수는 16일 홧술을 먹는 대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에는 자신에게 쏠린 팬들의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경수는 "실망했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미래에 대해 확실한 청사진은 없지만 일단 기다려 보겠다"고 희망을 꺾지 않았다.
블로킹 능력만 보강하면 이경수는 '아시아의 거포' 강만수의 대를 이을 만한 재목이다. 키가 197㎝이고 서전트 점프도 55㎝수준에 불과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쌓아온 구력에다 해결사로서의 스케일이 커 당분간 그를 능가할 선수는 나오기 어렵다는 게 배구인들의 시각이다. 팀간 이기주의와 불신으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은 배구계가 택할 마지막 해법은 조속한 타협 밖에 없다는게 배구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타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경수는 뛰고 싶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 이경수 파동 일지
이경수는 한양대졸업반이던 지난해 드래프트 대상이었지만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LG화재와 전격 계약했다. 때문에 선수등록이 거부돼 1년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실업 4개구단은 배구발전을 위해 13일 이경수 재드래프트에 전격 합의했다.
10알의 은행알을 뽑는 추첨에서 30% 확률의 LG화재는 16일 재드래프트를 하기직전 20% 확률의 현대캐피탈을 의식, 이경수를 스카우트하면서 준 16억원을 드래프트 비용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이경수가 현대캐피탈로 갈 경우 트레이드가 불가, 투자원금만이라도 회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LG화재는 이를 "이경수에 대한 기득권의 완전 포기"라고 말했지만 대한항공과 삼성화재는 "액수가 너무 많고 나쁜 선례가 된다"며 강력 반발, 드래프트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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