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인류는 어류도 독특한 관점으로 인식하였다. 사물과 연결되어있다는 생각, 따라서 어류도 인간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길흉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상상했다.가장 현실적인 효능은 역시 질병 치료이다. 남쪽의 저산(抵山)의 계곡에는 소같이 생기고 뱀 꼬리에 날개가 있으며 소 울음 소리를 내는 육(□)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이것은 높은 언덕에 살았으며 겨울이면 죽었다가 여름이면 되살아나는 이상한 물고기였는데 잡아먹으면 몸에 생겼던 종기가 없어졌다. 북쪽의 초명산(□明山)에서 흘러나오는 초수(□水)라는 강에는 머리가 하나에 몸이 열 개이며 개짖는 소리를 내는 하라어(何羅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등창이 나았다. 등창은 등에 나는 악성 종기로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는, 고대에는 다스리기 어려운 병이었다. 주로 영웅 호걸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때 그 울분과 원한이 등창을 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주유(周瑜)가 제갈량(諸葛亮)과의 지혜 겨루기에서 번번히 당한 끝에 등창이 나서 죽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견훤(甄萱)이 불초한 아들들 때문에 나라를 잃고 등창이 나서 죽었다.
남쪽의 도과산(禱過山)에서 흘러나오는 은수(□水)라는 강에는 뱀의 꼬리가 있고 원앙새의 울음 소리를 내는 호교(虎蛟)라는 물고기가 살았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종기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치질도 나았다. 치질은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 특유의 질병이라 한다. 치질이라는 질병의 존재로 인해 인류가 자연 속에 살면서도 동물과는 다른 자신의 길을 걸어갔음을 알 수 있다. 북쪽의 구여산(求如山)에서 흘러나오는 활수(滑水)라는 강에는 두렁허리 같이 생기고 등이 붉으며 사람이 말다툼하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는 활어(滑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혹을 낫게 할 수 있었다. 남쪽의 청구산(靑丘山)에서 흘러나오는 영수(英水)라는 강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원앙새의 울음 소리를 내는 적유(赤 □)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옴에 걸리지 않았다. 중원의 탁산에서 흘러나오는 탁수라는 강에 사는 수벽어라는 물고기도 피부병에 효험이 있었다. 이것은 맹꽁이 같이 생기고 주둥이가 희며 솔개 같은 소리를 내는데 잡아먹으면 버짐을 낫게 할 수 있었다.
고대에는 돌림병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동쪽의 갈산(葛山)에서 흘러나오는 예수(禮水)라는 강에는 마치 허파 모양 같이 생겼는데 눈이 넷이고 발이 여섯인 주별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이것은 신기하게도 몸 속에 구슬을 품고 있었고 고기 맛이 시고 달았는데 잡아먹으면 돌림병에 걸리지 않았다 한다.
정신 질환에 효과가 있는 물고기도 있었다. 북쪽의 북악산(北嶽山)에서 흘러나오는 제회수(諸懷水)라는 강에는 개의 머리에 아기 울음 소리를 내는 지어(□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미친 병을 낫게 할 수 있었다. 중원의 소실산(少室山)에서 흘러나오는 휴수(休水)라는 강에는 큰 원숭이 같이 생기고 긴 닭발톱에 발이 희며 발꿈치가 마주 보고 있는 제어(□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쓸데 없는 의심증이 사라졌다. 북쪽의 용후산(龍侯山)에서 흘러나오는 결결수(決決水)라는 강에는 앞서의 제어 같이 생겼으나 네 개의 발이 있고 아기 울음 소리를 내는 인어(人魚)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어리석음이 없어졌다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인어라도 요리해 먹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어리석음만이 질병이 아니다. 똑똑하다고 잘난 척하는 것도 고대인들에게는 치유해야 할 질병으로 간주되었다. 북쪽의 현옹산(縣雍山)에서 흘러나오는 진수(晉水)라는 강에는 피라미 같이 생기고 붉은 비늘이 있으며 꾸짖는 듯한 소리를 내는 제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뻐기던 마음이 일시에 사라졌다. 왕자병과 공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심각히 복용을 고려해 보아야 할 물고기인 셈이다.
고대인들도 살아가면서 근심이 많았던 듯하다. 오죽하면 한(漢)나라 때의 옛 시에서 "인생은 백년도 못 되는데 언제나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라고 한탄했을까? 그러나 이 역시 특효약이 있었다. 북쪽의 대산(帶山)에서 흘러나오는 팽수(彭水)라는 강에는 닭 같이 생기고 털이 붉으며 세 개의 꼬리, 여섯 개의 발, 네 개의 눈이 있고 까치 울음 소리를 내는 숙어(□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근심을 없앨 수 있었다. 까치가 길조라는 인식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듯 하다.
고대인들에게는 불면증보다는 잠이 잘 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중원의 반석산(半石山)에서 흘러나오는 내수수(來需水)라는 강에는 붕어처럼 생기고 검은 무늬가 있는 윤어(□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먹으면 졸음이 오지 않았다. 고대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습다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 집착했던 것 같다. 동쪽의 동시산(東始山)에서 흘러나오는 자수라는 강에는 붕어처럼 생기고 머리가 하나에 몸이 열이며 궁궁이풀 같은 향내를 내는 자어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방귀를 뀌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어류는 나쁜 일을 물리치고 좋은 일의 징조가 되기도 하였다. 중원의 괴산(槐山)에서 흘러나오는 정회수(正回水)라는 강에는 돼지 같이 생기고 붉은 무늬가 있는 비어(飛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천둥을 무서워 하지 않고 창, 칼 등 무기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북쪽의 탁광산(□光山)에서 흘러나오는 효수라는 강에는 까치 같이 생기고 날개 열 개가 있고 날개 끝에 모두 비늘이 있고 까치 울음 소리를 내는 습습어(□□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집에서 기르면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고 잡아먹으면 황달병에 특효가 있었다 한다. 서쪽의 영제산(英 □山)에서 흘러나오는 완수(□水)라는 강에는 뱀의 머리에 발이 여섯이며 눈이 말의 귀처럼 생긴 염유어(遺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면 잠 잘 때 가위에 눌리지 않고 흉한 일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고구려의 안악 1호분 고분 벽화에는 이 염유어가 등장한다. 무덤에 묻힌 사람이 평안히 잠자고 사악한 귀신에게 시달리지 말라는 바람에서 염유어를 그려넣은 것이리라. 고대인들은 그러나 문요어(文□魚)라는 물고기가 나타났을 때 무엇보다도 기뻐했을 것이다. 서쪽의 태기산(泰器山)에서 흘러나오는 관수(觀水)라는 강에 사는 문요어는 잉어 같이 생기고 새의 날개가 있으며 푸른 무늬와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늘 서해를 다니고 동해에서 노닐었는데 밤에만 날아다녔고 봉황새의 울음 소리를 내었다. 이것이 나타나면 천하에 큰 풍년이 들었다.
어류가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북쪽의 소함산(少咸山)에서 흘러나오는 돈수(敦水)라는 강에 사는 패패어(沛沛魚), 역시 북쪽의 요산(饒山)에서 흘러나오는 역괵수(歷□水)라는 강에 사는 사어(師魚)라는 정체불명의 물고기들은 몹시 유독하여 사람이 먹으면 목숨을 잃었다. 어류는 재앙의 징조가 되기도 하였다. 서쪽의 조서동혈산(鳥鼠同穴山)에서 흘러나오는 위수(渭水)에는 두렁허리 같이 생긴 소어(騷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들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고을에는 큰 전쟁이 일어났다. 역시 서쪽의 규산(□山)에서 흘러나오는 몽수(□水)라는 강에 사는 나어라는 물고기도 불길했다. 새의 날개가 있고 원앙새 울음 소리를 내는 이것이 나타나면 그 고을에 큰물이 졌기 때문이다.
큰물의 재앙과 쌍벽을 이루는 것은 가뭄이다. 동쪽의 독산(獨山)에서 흘러나오는 말도수(末塗水)라는 강에는 누런 뱀 같이 생기고 지느러미가 있으며 물 속을 드나들 때에 빛을 발하는 조용(條□)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것이 나타나면 그 고을에 큰 가뭄이 들었다. 역시 동쪽의 여증산(女烝山)에서 흘러나오는 석고수(石膏水)라는 강에 사는 박어(薄魚), 자동산(子桐山)에서 흘러나오는 자동수(子桐水)라는 강에 사는 활어(□魚)라는 물고기도 가뭄의 징조가 되는 불길한 물고기였다.
신비하고 성스러운 어류가 있다. 서쪽의 조서동혈산에서 흘러나오는 위수에는 전쟁의 징조가 되는 소어가 있었지만 또 다른 쪽으로 흘러나간 함수(檻水)라는 강에는 신비한 여비어(如比魚)라는 물고기도 있었다. 그것은 냄비를 엎어놓은 것 같이 생기고 새의 머리를 하였는데 울음 소리가 경쇠 소리처럼 맑았고 알 대신 구슬을 낳았다. 눈물을 흘리면 구슬이 되어 떨어졌던 교인(鮫人)처럼 이것도 잡으면 횡재를 할 물고기였다.
서쪽 바다 바깥에 사는 용어(龍魚)는 어류 중에서 가장 신성할 것이다. 잉어 같이 생겼는데 신이나 성인만이 잡아 타고 천하를 다닐 수 있었다. 후세에 금고(琴高)라는 신선이 잉어를 타고 강을 다녔다는데 아마 용어의 후예가 아닌가 싶다. 잉어는 오래 묵으면 용이 된다고도 하기 때문에 거의 용처럼 신성시되었다.
어류는 날짐승이나 길짐승에 비해 유익한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고대인들은 어류를 좋게 본 모양이다. 질병 치료에서는 종기나 혹, 피부병 등에 효험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대인들이 늘상 시달리던 질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재앙의 징조로서는 가뭄이 현저하게 많았다. 물고기이기 때문에 물의 상태에 가장 민감할 것이라는 발상에서였을까?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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