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음식 중에서 가장 출세한 것을 꼽으라면 바로 막국수다. 냉면, 칼국수 다음으로 가장 대중적인 면이 됐다. '춘천 막국수'를 전위로 삼아 전국에 퍼지게 된 막국수는 이제 쟁반국수등 변종까지 생기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막국수는 메밀 농사를 짓는 강원도 산골 어디에서도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마을마다 조리방법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춘천 막국수가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세련미가 있다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촌티가 심하다.
가장 촌스러운, 그래서 고유의 맛을 잘 간직한 막국수가 바로 평창 막국수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의 고향인 봉평면과 소설에서 장돌뱅이가 향하는 대화면에 가면 정말 촌스러운 평창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막국수는 이름 그대로 '막 만들어 먹는 국수'이다.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국수틀에 눌러 면을 뽑는다. 물에 삶아 냉수에 흔들어 사리를 만든다. 육수는 김칫국물.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김치보다는 동치미나 나박김치 등 맑은 김칫국물을 쓴다. 깨소금과 김가루를 뿌리고 취향에 따라 겨자 등을 풀기도 한다.
평창 막국수는 일단 눈으로 보기에 맛이 없다. 거무튀튀한 면 위에 다시 검은 김가루가 뿌려져 있고, 면도 또아리를 잘 틀어놓지 않은 채 모양새를 아무렇게나 해서 놓는다.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먹는 방법. 면을 육수와 잘 비벼놓고, 메밀 삶은 뜨거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간장을 조금 탄다. 그래도 밍밍하다. 사치스러운 도시적 미각과 결별하는 의식이자 찬 국수를 먹기 전의 준비운동이다.
입과 코로 동시에 먹는다. 꿀떡꿀떡 넘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이 씹는다. 씹는 동안 후각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 메밀의 향기를 찾는다. 뭔가를 찾았다면 성공이다.
은근히 코를 자극해 머리 속까지 채워버릴 것 같은 깊은 메밀의 향기가 있다. 꼭꼭 씹어 한 사발을 거의 비울 때쯤 도시에서 먹은,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개량 막국수는 너무나 경박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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