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007 어나더데이'(007 Die Another Day·감독 리 타마호리)'가 공개됐다. 007 시리즈의 20번째 작품인 '어나더데이'는 최근 반미 감정과 맞물려 한국을 왜곡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007 어나더데이'는 북한에서의 작전에 실패, 억류돼 있던 제임스 본드가 테러리스트 자오(릭 윤)와 교환된 후 홍콩, 쿠바 등을 돌아다니며 DNA 교체수술로 영국인 광산 재벌로 변신한 북한 강경파 문대령(윌 윤 리)을 추적하는 내용. 문대령은 영화 초반 잠깐 출연하고, 영화 중반부부터는 수술로 변신한 구스타프 그레이브스(토비 스테픈)가 자오와 함께 악당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자오의 파괴적 이미지와 각종 첨단 무기 등 볼거리가 적잖은 영화.결론부터 말하면 '007이 한국을 왜곡했다'는 소문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치적 입장보다 무지의 소산이었다. 장승에는 '늙은 사람'이라고 한글로 쓰여있고, 북한군 장교는 군복의 앞섶을 풀어헤쳤다. "했습네다"식의 북한 사투리와 남한말이 섞여 쓰이며, 마지막 대결 부분 제임스 본드가 입은 상의에는 '청천1동대'라는 글자가 쓰여 실소를 자아낸다.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킨 문제의 한국 폄하 장면은 예상보다 강도가 약하다. 문대령 역을 제안받은 차인표의 출연 거부 등 당초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위기를 연출한 탓인지 이전 007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적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절제된 느낌. 한국이 가난하게 묘사된다는 장면은 농부 두 명이 소를 끌고 가다 폭격기에서 떨어진 자동차를 쳐다보는 장면이고 절에서 제임스 본드가 러브신을 갖는다는 장면도 불상이 잠깐 스쳐 지나갈 뿐 사찰로 느껴지지 않는다. 미 안보국(NSA)의 간부가 "남한군을 동원하라"는 대사 역시 듣기는 거슬리지만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때, 특별히 논란을 삼기는 강도가 약해 보인다.
문제는 영화가 북한을 적국으로 삼기 위해 오히려 파괴력이 꽤 대단한 첩보 강국으로 그리는 것. 북한을 '악의 축'이라 규정한 부시 미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공포의 대상을 과장하는 방식은 007 시리즈의 가장 큰 도덕적 약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이전 007 영화의 적국이었던 러시아 중국 쿠바 이라크 등에 대한 왜곡보다 지나치다고는 볼 수 없다.
정치적 왜곡이 결코 적지 않았던 영화들에 대해 '미국편'을 들면서 영화를 관람해왔던 우리 관객이 이번에는 '007 보이코트'에 얼마나 적극적일지. 더욱이 역대 007 시리즈중 개봉 성적이 최고인 오락 영화가 우리나라의 국민 감정과의 '일전'에서 어떤 성적을 올릴지도 관심거리다. 1989년 UIP 직배 반대 운동이후, 우리나라에서의 외국 영화 보이코트는 별로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폭스코리아는 예정대로 31일 개봉을 강행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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