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에 통한의 눈물을 삼켰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15일 2004년 차기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현재 민주당 내에서 대중적 지지도가 가장 높은 그가 지난 대선의 미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실상 정치은퇴를 밝혔다는 점에서 워싱턴 정가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올 가을 정치 일선에 다시 등장한 뒤 부시 대통령의 대 이라크전 확전과 경제정책을 맹비난한 데 이어 불과 일주일 전에는 자신의 경제 플랜을 내년 초에 공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던 차여서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불출마를 조심스럽게 짐작하고 있던 측근까지도 그의 결심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현실화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날 C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 에 출연해 그가 밝힌 불출마 배경은 "지금은 때가 아니며 현 정권을 끝내기 위해서는 내가 출마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 최선" 이라는 것이다. 또 "부시 대통령과 내가 차기 대선에서 다시 맞붙는다면 불가피하게 선거전의 본령에서 벗어날 수 우려가 있다" 는 이유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어가 최근 몇 달 간 활발히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개인적 한계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으로 보고 있다. 20% 이상 벌어진 부시와의 지지도 격차, 측근들의 만류와 이탈, 자신에 대한 지지도 못지 않게 반감을 갖고 있는 유권자도 40%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발목을 붙잡았다.
여기에 '마음의 결속(Joined at the Heart)' '변화하는 미국의 가정(About the Changing Family in America)' 이라는 두 권의 책을 아내 티퍼와 함께 펴낸 뒤 가진 한달여 간의 전국 순회 판촉 겸 정치자금 모금행사에서 예상보다 저조했던 국민들의 반응도 한 이유가 됐다.
물론 측근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이와는 좀 다르다. 고어가 '메트로폴리탄 웨스트 파이낸셜' 이라는 금융지주회사의 부회장으로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객원교수로서 정치 외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굳이 다시 정치를 재개할 커다란 동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가정에 충실한 가장 모범적인 남편이자 가장으로 소문난 그가 최근 고향인 테네시주 내슈빌의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개인적 사생활을 정치로 인해 다시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사는 고어가 "그 선거전을 또 다시 참아내야 하는가, 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번거로운 일을 원하지 않는다" 고 수 차례 심정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다시 부시와 싸웠다가 패했을 경우 지난 대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켜왔던 정통성을 잃어버리느니 '지지도에서 이겼어도 선거인단수에서 진 사실상의 대통령' 이란 상징성을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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