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전쟁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커다란 꿈을 안고 1999년 4월 태평양을 건넜던 그가 올 9월4일 3년5개월 만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한 생존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4,500여명. 이 가운데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선수는 고작 150명 안팎에 불과하다.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가기 위해서는 3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동양인 출신의 타자가 아닌가.
때문에 최희섭(23·시카고 컵스)이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로 우뚝 선 것은 이 같은 생존 공식과 통념의 벽을 깨뜨린 쾌거였다. 16일 웨스틴 조선호텔서 만난 최희섭에게서 야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한 치열함이 느껴졌다.
▶야구와의 만남
최희섭이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한 때는 광주 송정초등학교 5학년 시절. 어릴 때부터 체구가 커서 육상선수로 뛰었던 최희섭을 눈 여겨 본 외삼촌의 권유 덕분이었다. 야구명문 송정초등학교 야구부 후원회장과 친분을 맺고 있었던 외삼촌은 조카를 이 학교로 보냈고 최희섭은 자연스럽게 야구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방망이 중심에 맞으면 장외를 넘어가는 대형홈런을 터뜨리면서도 어이없는 공에도 헛스윙을 연발해 '공갈포'라는 별명을 얻었던 최희섭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캐나다 세계청소년대회서 4할대의 타율을 기록,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연고구단 해태가 3억원을 제시하며 추파를 던진 것. 야구 인생 최대의 갈림길이었다. 결국 그는 "큰 무대에서 뛸 것"이라며 메이저리그 진출 보장을 받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힘들었던 마이너리그
99년 4월 홀홀 단신 미국으로 건너간 최희섭은 이후 한번도 조국 땅을 밟지 않을 만큼 모질게 야구에만 매달렸다. 단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고 손에 물집이 잡혀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 동안 배운 것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자세로 임했죠." 이동을 위해 손수 차를 몰고 15시간이나 운전을 해야 하는 마이너리그 생활을 묵묵히 감내하며 첫해 싱글 A에서 뛴 그는 2000년 더블 A, 2001년 트리플 A로 올라가는 등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갔다.
당시 그의 가장 큰 적은 언어나 음식의 장벽도 아닌 외로움이었다.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해에는 정말 따뜻한 말 한마디 던져주는 친구가 그리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텃세라는 것은 있었고, 그것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몫이었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결국 그는 올 9월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디뎠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
빅 리그 데뷔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닷새만인 9월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서 선발 출전, 7회 132m짜리 대형 홈런까지 뽑아냈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한국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의 관심사가 됐다. 이후 메이저리그서 최희섭이 거둔 성적은 24경기에서 50타수 9안타로 타율 1할8푼, 홈런2개, 4타점, 6득점. 차세대 거포로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시즌 후반기 스스로 체력부족을 느끼기도 했죠. 내년 시즌에는 약점을 보강해 더욱 열심히 하고 싶어요."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내년 시즌 주전 경쟁에 대해서도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내년 시즌 목표를 물어봤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한사코 말을 아꼈던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다시 묻자 그제서야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신인왕에 전혀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리고 메이저리그서 꾸준히 좋은 플레이를 펼쳐 언젠가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최초의 동양인 선수가 되고 싶어요."
20일 팬 사인회를 끝으로 곧바로 남해 훈련장으로 내려가 내년 시즌에 대비, 몸 만들기에 들어갈 계획을 밝혔던 최희섭은 스스로를 향한 다짐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야구란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법이죠.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 하는겁니다." 한 길을 오래 걷는 사람은 누구나 도인의 풍모를 풍긴다고 했던가. 최희섭에게선 아직 설익었지만 '야구도인'의 냄새가 풍겼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프로필
생년월일 1979년 3월16일
출신교 광주 송정초등학교―충장중―광주일고―고려대 2년 중퇴 좌투좌타
체격조건 195㎝, 115㎏ 100m 달리기 12초
주요 경력 1997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최다홈런상, 99년 3월 계약금 120만 달러 받고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와 계약, 99년 마이너리그 싱글A, 2000년 마이너리그 더블A로 승격, 2000년 애리조나 풀리그 유망주 1위, 2001년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승격, 2002년 9월4일 메이저리그 데뷔
■ 최희섭의 생존전략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험난했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까지 최희섭(23)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생존전략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최희섭은 "야구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곧 동양인 타자로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 자신만의 처세술이기도 했다.
최희섭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야구 못지않게 생활에 신경을 썼다. 비록 영어를 못했지만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먼저 말을 붙였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면서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구단 동료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열성도 보였고, 자신에게 은근히 텃세를 부리는 백인 선수에게는 스스로 조심하는 태도를 취해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그는 "실력만큼 인정 받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인간관계는 아주 중요하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최희섭이 그라운드 밖에서 취할 태도도 그 동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들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최희섭은 "CF 촬영이나 방송출연 요청이 많지만, 당분간 야구에만 전념할 것"이라며 "다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희섭은 17일 어린이 보육시설 시온원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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