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전 '화양연화' 때나 지금이나 둘은 비슷했다. 펑크 머리에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장만위(張曼玉·38)는 나이와 영화 속 이미지를 뒤집듯 쾌활했고, 양자웨이(梁朝偉·40)는 시험을 보는 아이처럼 긴장하고 조심스러워 했다. 둘은 중국 장이모 감독의 첫 무협영화 '영웅'에서 다시 한번 비운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둘 다 무협영화는 1994년 '동사서독'(감독 왕자웨이) 이후 8년 만. 12일 '영웅' 시사회 참석차 베이징에 온 그들을 만났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청바지 차림에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장면이 같을 만큼 서로 통한다"(장만위) "만족스런 인물과 컷을 찾으려 이야기를 많이 한다"(양자웨이)는 말로 연기호흡을 과시했다.
"장이모감독 믿고 출연 결심"
장만위
장만위에게 장이모 감독은 '영웅'이다. "캐릭터가 고착화 되는 것 같아 더 이상 비극적인 인물을 맡고 싶지 않았지만 장이모 감독이기 때문에 비설 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미모와 무협을 함께 갖추었고, 춘추전국시대 학자이자 최고의 무예를 가진 파검(양자웨이)을 사랑하는 비설은 세 가지 색깔을 보여준다. 붉은 색조를 띤 강렬한 질투의 여인, 푸른 색조의 순애보적인 현모양처, 하얀 옷을 입은 냉정한 협객.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한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피아노 줄을 달고 공중을 나는 것보다는 여자로서 검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결투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고 솔직히 말하는 장만위. " '영웅'에는 중국 역사가 들어있고, 중국인이 아니면 모를 서예 무술 음악 등 동양문화의 아름다움도 있다. 그것들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다른 홍콩 배우들은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있는데 그녀는 왜 망설이는 걸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또 동양인을 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꼭 인기 얻어야 좋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역이라면 한국영화 출연"
양자웨이
그도 역시 장이모 감독에 대한 존경으로 말문을 열었다. 장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홍콩으로 찾아와 출연을 제의한 것, 그와 처음 작업한 것에 행복해 했다. "북방인의 기질을 타고나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대범하다. 주제와 상황에 따라 영화를 단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 예다."
무협영화로는 워낙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캐릭터 표현이 쉽지 않았다. '동사서독'의 실제 무술에 가까운 연기와 달리 '영웅'은 춤추듯 유연한 동작 속에 미적 감각과 역사 철학 문화를 담아야 했다. "그것이 동양의 무협이 서양의 액션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자객 파검은 훗날 진시황이 될 영정을 죽이지 않고 돌아선다. "파검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런 인물이다. 영정을 죽이게 되면 또다시 중국대륙은 분쟁에 휩싸이고, 백성들의 희생만 커진다. 그 마음을 연인인 비설에게조차 말하지 못한다. 작은 희생으로 큰 것을 이루는 것, 바로 영웅의 모습이 아닐까."
'화양연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특정 나라를 고집하지 않고 연기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고 했다. "한국에서 뮤직비디오도 그래서 찍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좋은 영화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
/베이징=이대현기자 leedh@hk.co.kr
● 영웅은 어떤 영화
'영웅'은 7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천하통일을 앞둔 영정(진시황)을 죽이려는 4명의 자객인 조나라 파검과 그의 연인 비설, 고아출신의 무명(리리옌제)과 국적불명의 무림 고수 은모장천(견자단)이 벌이는 갈등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장쯔이가 파검의 하녀로 나온다. 영화는 무명이 영정 앞에 나타나 나머지 셋을 죽인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영정의 반론, 실제 상황을 각각 색채를 달리해 현란한 액션과 함께 보여준다. 장이모 감독은 "중국 전통미와 '무'보다는 예를 중시하는 '협'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영웅'에는 중국영화계 영웅들은 다 모였다. 촬영은 '화양연화'의 크리스토퍼 도일, 음악은 '와호장룡'의 탄둔. '와호장룡'의 흥행 성공에 자극을 받은 미국 미라맥스사가 제작비 3,500만 달러 대부분을 투자했다. 국내 개봉은 내년 1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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