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을 사흘 앞둔 16일 저녁 실시된 사회·문화·교육·여성 분야 토론회를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 기간에 예정됐던 세 차례 법정 TV 토론회가 모두 끝났다. 매번 토론회 때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저마다 판세에 유리한 영향을 가져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종반 들어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선거 판세에 토론회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이날 마지막 토론회에서 판세 반전을 위한 모종의 '승부수'가 던져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 같은 극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이는 이, 노 두 후보가 모두 예기치 않은 실수에 의한 결정적 감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토론을 벌이다 자칫 '에러'를 범할 경우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입을 것을 서로간에 우려, 의도적으로 전선 형성을 기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선거 판세가 그 만큼 팽팽하다는 것을 의식한 두 후보의 토론전략 때문이었던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같은 토론 자세는 세 후보가 매번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지만 주도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에도 맞물려 있다. 세 차례의 토론에 대한 총평으로 격렬한 장외공방을 TV 속으로 옮겨와 그저 재탕, 삼탕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 기간에 실시된 TV 토론이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7년 대선 때에 비해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고 대선구도 변화에 따라 신축적으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토론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이날 토론에서는 대상 주제가 광범위했기 때문에 소 주제에 따라 토론 공방의 열기가 사뭇 달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언론사 세무조사, 의약분업, 고교평준화, 국민연금 건전화, 복지 예산 규모 등에 대해서는 세 후보가 3인 3색의 공약과 해법을 제시, 열기가 고조되면서 토론의 중심축이 형성됐다. 고교 평준화 폐지 및 자립형 사립고 확대 여부 등을 놓고 한나라당 이 후보와 민노당 권 후보가 민주당 노 후보에게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 정책이 판이하게 다른 데 어떻게 조율했는가"라고 추궁, 협공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교육은 철학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내 정책대로 갈 것"이라며 자신의 독자성을 단호하게 부각시켰다. 국민연금 재정 문제와 관련해 벌어진 이, 노 두 후보간 공방은 거의 신경전 수준으로 번졌다. 노 후보가 국민연금 지급액을 깎아야 한다는 이 후보의 공약에 제동을 걸자 이 후보가 "재정 파탄을 막을 대안도 없이 듣기 좋은 말만하는 것은 정치인으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노 후보가 다시 "상대 후보의 정직성을 문제 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쏘아 붙여 신경전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면서 부동층과 여성·노인층의 마음을 잡기 위해 이, 노 두 후보가 각종 수치를 열거하며 '공부한 흔적'을 보인 것은 지난 번 토론 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세 차례 TV 토론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흥행' 성적에서 기대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TV 토론을 전후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TV 토론 시청률도 97년 대선 때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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