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경기 하남시 춘궁동과 초2동 그린벨트지역. 주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건축을 허용한 300∼500여 평의 축사 100여 동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한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소와 돼지 등 가축은 보이지 않고 각종 가전제품과 생필품만 가득 차 있다. 축사가 한 인터넷 쇼핑몰의 물류창고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창고업자 김모(45)씨는 "땅 주인이 2년 전 축사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창고로 개조한 것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며 "이 일대 축사의 90% 이상이 용도 변경돼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시의 98%가 그린벨트인 하남시는 정부가 그린벨트 지역 양성화를 외치며 세대당 300∼500평 규모의 축사를 5개까지 허용하면서 공장과 창고 등이 난립해 벌써 전체 면적의 10∼20%가 훼손됐다.
정부가 원주민의 재산권 침해와 생활불편 해소라는 명분으로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그린벨트 해제계획을 발표하면서 수도권 곳곳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해제지역 대부분이 택지개발지구나 지자체의 현안사업용 부지로 지정돼 환경파괴는 물론 투기벨트화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성남시 도촌동, 의왕시 청계동 등 내년부터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국민임대주택이 건립될 예정인 지역에는 벌써부터 개발기대심리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70가구 남짓한 도촌동 일대에는 2년 전 인구 2만 여명을 수용하는 국민임대주택단지 개발계획이 발표된 이후 현재 30∼40여 채의 단독주택이 비닐하우스와 논밭사이에 들어서 있다. 주민 이모(55)씨는 "그린벨트라고 해도 3층 이하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완화하면서 개발시 보상이나 입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범박동 일대 논에는 지난해 그린벨트 해제소식이 전해진 후 미리 땅을 사뒀던 외지인들이 한 푼이라도 값을 더 받기 위해 토사를 가득 실어와 쏟아붓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린벨트 양성화 소문이 난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일대는 최근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A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 그린벨트 양성화 언급이 나오면서 땅을 사겠다는 문의 전화가 하루 2,3건씩 걸려오고 있다"며 "현재 평당 50만원가량 가는 땅값이 양성화가 확정되면 2배 이상 오르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들의 공공시설 설치 명분을 내세운 그린벨트 훼손 사례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 그린벨트내에 허가된 건축물 및 시설허가 면적은 148만㎡(3,163건)로 지난 해 120만㎡(2,664건)에 비해 25%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이 중 지자체가 공공시설 설치를 위해 요구한 면적은 올해 25만9,000㎡로 지난 해 6만6,000㎡보다 3배나 급증한 것으로 드러나 이들 기관이 그린벨트 훼손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남YMCA준비위원회 안창도(安昌道·48) 사무총장은 "그린벨트 지역을 무분별하게 양성화하는 것은 오히려 국토이용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보다 체계적인 계획아래 그린벨트를 과감하게 풀 곳은 풀고 보존할 곳은 보존하는 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그린벨트 해제 개요
"불필요한 그린벨트는 풀겠다." 1971년부터 지속돼 온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견고한 철옹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린벨트 해제를 내세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대통령 공약사항을 시발점으로 98년 그린벨트제도개선협의회가 구성돼 이듬해 7월 제도개선방안이 나왔고, 2000년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에 이르면서 그린벨트 해제의 물꼬가 트였다.
지난 30여년동안 묶였던 전국의 그린벨트 면적은 5,397㎢ (16.33억평)로 전 국토의 5.4%에 달한다. 이 중 해제 대상지역으로 정해진 곳은 그린벨트 실효성이 적은 7개 중소도시권 (1,660㎢) 고리 원전 등 산업단지 주변지역(132㎢) 20호 이상의 집단취락 및 관통취락 지역(100여㎢) 수도권 등 7대 대도시권(400여㎢)으로 총 해제 대상면적은 2,300여㎢로 전체 그린벨트 면적의 42%에 이른다. 경제개발시대 우리나라의 녹색 벨트를 지탱해왔던 그린벨트제도에 일대 메스가 가해진 격이다.
2000년 1월 시화 산업단지 주변(9.33㎢)이 해제된 것을 시작으로 도시기본계획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 12일 현재 해제된 면적은 694.094㎢로 30% 가량이 해제가 완료됐다. 그린벨트 실효성이 낮은 제주, 춘천, 청주 등 7개 중소도시권은 이미 해제됐거나 빠르게 해제절차가 진행중이며 300호 이상 취락지역 및 관통지역도 서울의 서초구 전원마을 등 6개지역을 포함, 총 66개소중 55개소가 해제됐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대도시권의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난개발 우려다. 특히 당초 300호 이상 집단취락지역에서 20호 이상으로 기준이 낮아지면서 대도시권의 취락지역 해제대상은 더욱 확대됐고, 수도권을 둘러싸고 있는 광대한 녹색벨트의 재조정 문제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칫 해제 기준이 흔들릴 경우 개발과 보존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도 배제할 수 없다.
20호 이상의 취락지역은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면 해제한다는 방침에 따라 각 자치단체별로 계획 수립이 진행되고 있어 내년 상반기께 본격적으로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미개발의 새로운 땅이 대거 풀려나는 7개 대도시권 주변 그린벨트 재조정은 더욱 민감한 사안. 정부는 광역도시계획 수립 후 해제지역을 설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영국에서는
그린벨트 제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1938년 런던의 그린벨트법이 제정된 후 2차대전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확대된 그린벨트는 현재 165만㏊로 영국 국토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그린벨트는 도시의 확산 방지에 큰 몫을 해왔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확 트인 공지(空地)를 두어 도시가 서로 붙는 것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 농촌지역을 보호하는 것. 도시 외곽에 영원히 개발하지 않는 땅을 남겨둔다는 취지에 따라 실제로 지정 후 개발된 면적이 0.01%에 불과할 정도다. 이와 함께 그린벨트 지역은 경관보호지역 등의 추가조치가 취해지면서 자연과 호흡하는 레크리에이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그린벨트 제도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까닭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른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1947년 개인의 토지소유권은 인정하지만 토지 개발권은 국유화해 모든 토지의 개발 행위를 국가가 통제토록 하는 개발허가제를 도입했다. "모든 땅이 개발가능한 데 그린벨트만 묶었다"는 우리와 달리 "국토 전체가 개발제한지역이고, 그린벨트도 한 형태의 제한이라는 개념"인 것.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그린벨트와 주변지역의 땅값 차이가 크지 않아 주민들의 반발이 없다. 오히려 개발되면 탁 트인 공간에서 비롯되는 재산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개발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의 그린벨트 지지자들이 '개발허가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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