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하면서 오래살면 뭐합니까. 건강해야 진짜 장수하는 거죠," 자연 수명보다 '건강 수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화방지 클리닉이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외국 클리닉의 지점도 3∼4곳이 들어섰다. 보통 월 수십만원의 치료비가 들지만 "나이 먹고도 생활의 활기를 되찾는 비용으로는 아깝지 않다"는 것이 클리닉을 찾는 이들의 반응이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화방지의학(Anti-Aging Medicine)이 본격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피곤하다"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중년이 변화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것은 호르몬치료다. 그러나 호르몬치료가 비법은 아니다. 식생활 개선과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약물의 효과는 단기간에 그친다.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임승길 교수는 "호르몬치료의 목표는 수명 연장이 아니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용욱노방클리닉 권용욱 원장은 "매일 운동하는 사람은 9년, 야채를 1주일에 5접시 이상 먹는 사람은 4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운동과 식이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대로 된 노화방지법은 기초 건강과 호르몬지수, 체력 등으로 드러난 '생물학적 연령'에 따라 적절한 식단, 운동법, 약물치료를 종합 처방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호르몬치료는 성장호르몬 투입. 성장호르몬이 크게 떨어진 중년에게 호르몬을 주사, 30대 수준으로 보충해 주면 근육이 늘면서 뱃살이 빠지고 성기능이 향상되는 등 효과가 나타난다. 성장호르몬이 뼈의 성장을 촉진할 뿐 아니라 근육을 늘리고, 지방을 분해해 비만과 동맥경화 발병률을 줄이며, 면역기능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은 30세를 정점으로 10년마다 약 15%씩 감소, 60대가 되면 30세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성장호르몬이 암을 초래한다는 일부 부작용도 보고됐지만 전문의들은 "없던 암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며 "다만 암이 이미 발병한 경우 성장호르몬이 암세포 성장을 촉진할 위험은 있다"고 설명한다. 권용욱 원장은 "호르몬치료를 받기 전 혈액검사로 암 표지자 검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는다면 암에 대한 걱정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처방대로 용량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도 널리 쓰인다. 임승길 교수는 "50대 남성의 약 30%가 남성호르몬 부족증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에게 호르몬을 보충해주면 뼈와 근육이 강화하고, 지방이 분해돼 심혈관질환 위험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폐경을 거치며 급격히 여성호르몬이 떨어져 갱년기 증상을 겪는데 여성호르몬 대체요법이 효과적이다.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도 각각 전립선암, 유방암 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호르몬치료의 효과를 유지하려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하루 30분 이상의 운동은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고 면역기능을 좋게하며 성인병 위험을 줄이므로 노화방지의 가장 확실한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중년 운동이라면 달리기, 걷기 등 유산소운동을 떠올리지만 근력운동도 중요하다. 베스트클리닉 이승남 원장은 "근육이 줄면 에너지 생산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함께 감소해 활력이 없고, 신진대사가 떨어져 당뇨 등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아령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도움이 된다. 이원장은 "가벼운 것을 15번 이상 들어올리는 근지구력 운동을 먼저 한 뒤 최대한 들 수 있는 무게의 70% 이상을 7회 이내로 들어올리는 근력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근력과 근지구력을 함께 키우려면 최대 무게의 50∼70%를 8∼12회 들어올리는 운동을 한다.
단 갑작스런 운동은 심장 등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성덕현 교수는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심폐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 체력측정을 통해 운동능력에 걸맞은 운동수준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서울병원 내과 최윤호 교수는 "생식이나 채식이 좋다고 한가지만 고집하는 것보다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균형있는 식사를 강조한다. 또 항산화 성분을 섭취, 활성산소를 줄이는 것이 좋다. 활성산소가 세포와 DNA를 공격해 각종 만성질환과 노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 나물 등 야채 섭취가 많은 편이지만 간이 짜므로 생야채를 많이 먹도록 신경쓰는 것이 좋다.
항산화 물질은 비타민 A, C, E, 미네랄 중 셀레늄, 크롬 등이 대표적이다. 식품이나 일반 비타민제로는 항산화 효과를 낼 정도의 용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정제형태의 항산화제를 처방받아야 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불로초는 없다"
저마다 노화를 막는 특효약을 찾아다니지만 '불로초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최근 주사제보다 간편해 화제를 모은 스프레이형 호르몬도 임상적으로 효능이 확인되지 않았다. '건강 스프레이'라 불리는 이 성장호르몬 촉진제는 미국산으로 2개월치 1병에 55만원. 워낙 고가라 널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부유하고 건강에 관심이 높은 일부 중년층 사이에서 "써 보니 피로가 싹 가신다"는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5개 대형병원 가정의학과가 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조군과 비교해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 전문의는 "외국의 임상시험 결과도 마찬가지"라며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나타난 효과는 '플라시보(위약)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천연성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 식물성 호르몬제도 약효 면에선 크게 기대할 게 없다. 콩, 석류 등에서 추출한 호르몬제는 주로 여성호르몬 역할을 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한다. 전문의들은 "식물성 호르몬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콩, 두부 등 식품에서 보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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