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들 가운데는 제품 이름이 보통명사화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아자동차의 '봉고' 승합차는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승합형 자동차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탄산음료인 코카콜라의 '콜라',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소니의 '워크맨', 디자인용 펜을 지칭하는 '로트링', 4륜 구동 자동차인 '지프' 등도 한 회사의 제품명이 동종 제품 전체를 대표하는 보통명사가 된 경우다.이 같은 현상은 시장에 처음 출시되는 제품이 소비자들의 인식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모나미에도 그런 제품이 있다. 바로 사인펜과 매직펜, 그리고 플러스펜이 그것이다.
사인펜은 원래 일본에서 처음 출시된 제품이다. 일본의 3대 문구 제조업체 가운데 '펜텔'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원래 회사명은 대일본문구(주)였다. 도쿄(東京)를 근거지로 하는 이 회사는 호리에 유키오(堀江幸夫·90) 회장이 1949년 붓 전문 제조업체로 창업해 세계적인 종합 문구회사로 성장한 기업이다.
사인펜은 바로 이 회사의 호리에 회장이 붓에서 힌트를 얻어 창안한 제품이었다. 2차 대전 종전후만 하더라도 필기구는 붓 아니면 펜이었다. 붓은 쓰고 난 뒤에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씻어서 보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이 일찍 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붓을 쓴 뒤에 깜빡 잊고 씻지 않은 채 그대로 뒀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잦았다. 붓 끝에 부착된 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물에 충분히 담궈 딱딱해진 털을 풀어야 한다. 호리에 회장도 그런 경우를 자주 당했다고 한다. 그러다 급히 붓을 써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붓 털 끝부분에 물을 묻혀가며 써보니 글씨가 써지더라는 것이다. 호리에 회장은 먹물을 조금씩 흘려만 주면 매번 먹물을 묻힐 필요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것을 상품화한 것이다. 호리에 회장은 그런 과정을 거쳐 개발한 '붓펜'이 서명(사인)하는 데는 제격이라고 해서 '사인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사인펜의 탄생 과정이다.
매직펜은 원래 미국 제품이다. 우치다요코(內田洋行)의 우치다 겐민(內田憲民) 사장이 미국에서 열린 세계 문구박람회에 참가한 뒤 일본으로 들여온 '펠트 펜'(Felt Pen)이 매직펜의 시초다. 펠트 펜은 짐승 털의 섬유를 가열·압축해 직물처럼 만든 모전(毛氈)을 통해 잉크가 스며나오도록 고안된 필기구다. 우치다 사장은 이 펜의 생산을 데라니시(寺西) 화학에 맡겼다. 그리고 나서 이 펜이 벽이나 박스, 돌, 나무 등 아무데나 글씨를 쓸 수 있는 '마술(매직)과도 같은 펜'이라는 뜻에서 '매직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모나미는 65년 일본의 문구부품 제조사인 데이보하토(帝帽-Hat)사로부터 닙(Nib, 펜촉)을 공급받아 '플러스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플러스펜은 사인펜보다 얇고 부드럽게 글씨를 쓸 수 있어 지금도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나는 플러스펜의 유명세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15년전 쯤인가, 일본 플라스사라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대뜸 전화를 걸어와 "모나미가 플라스사 이름을 도용해 플러스펜을 만들었다"고 항의했다. 플러스펜은 비록 일본 부품을 쓰긴 했지만 모나미가 자체 개발한 고유 브랜드인데도 그 일본인은 우리를 마치 도둑 취급하며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내가 "플러스펜은 독자 브랜드다. 당신네 회사는 언제 생겼길래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이자 위세에 눌린 그 일본인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모나미 제품이 해외에까지 알려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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