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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어플루엔자 / "소비중독" 당신은 난치병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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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어플루엔자 / "소비중독" 당신은 난치병 환자

입력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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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더 그라프 등 지음·박웅희 옮김 한숲 발행·1만6,000원한 의사가 진료실에서 값비싼 옷으로 치장한 여자 환자를 검진하고 있었다. 의사가 말한다. "몸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환자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럼 왜 이렇게 기분이 엉망일까요? 커다란 새 집을 장만하고 차도 최신형으로 사고 새 옷장도 구했어요. 직장에서는 봉급도 크게 올랐고요. 그런데도 아무런 흥이 나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생각이 들어요. 도움이 될만한 약은 없을까요?"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환자가 깜짝 놀라 묻는다. "무슨 병인데요?" 의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플루엔자에요. 신종 유행병입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존 더 그라프가 제작, 1997년 PBS TV에 방송돼 반향을 일으킨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환경과학자 데이비드 왠과 미국 듀크대 명예 경제학 교수 토마스 네일러가 참여해 2001년 펴낸 '어플루엔자'는 소비지상주의를 고발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책이 지목하는 어플루엔자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도 전세계 자원의 25%를 소비하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 온실가스의 25%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타나는 어플루엔자 증상의 대표는 쇼핑 열기다. 2000년 한해에 거의 6조 달러를 쇼핑하는데 지출했다. 고등교육(650억 달러)보다 신발 보석 시계 등(800억 달러)에 더 많은 돈을 썼다.

1986년만 해도 미국에서 고등학교가 쇼핑센터보다 많았는데 1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쇼핑센터가 고등학교의 2배를 넘어섰다. 미국인들은 일주일에 6시간을 쇼핑에 할애하면서도 아이들과는 40분 밖에 놀아주지 않는다. 미국 10대 소녀의 93%는 쇼핑을 가장 좋아하는 활동으로 꼽을 정도며 미국인들이 쓰레기봉투 구입에 쓰는 돈이 세계 90개국의 지출총액보다도 많을 정도다.

쇼핑중독은 개인 파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2000년 한해동안 미국 가계는 평균 7,564달러의 카드빚을 지고 있으며 대학생 조차 평균 2,500달러에 이른다.

기대감은 끝없이 상승한다. 1950년대에는 부부가 쓰는 침실이 12㎡ 정도였다. 지금은 중간 가격대의 집도 부부 침실이 족히 28㎡는 된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최신 가정용품이 없으면 박탈감을 느낀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억만장자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더 좋고, 더 많은 물건을 사기 위해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조급해지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빠진다.

그렇다면 어플루엔자는 언제부터, 왜 나타났을까. 저자들은 어플루엔자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질병은 아니라고 말한다. 옛날부터 비슷한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제한적인 부는 커다란 가난"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의 대량생산체제, TV의 보급과 광고의 발달은 어플루엔자의 확산을 더욱 부추기고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제품 수명을 갈수록 짧게 해 자주 교체하도록 하고 성능을 조금씩 여러 차례 올리는 것도 어플루엔자의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저자들은 어플루엔자가 매우 고치기 힘든 병임에 틀림없으나 치료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소유물과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소모적인 경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람들의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비할 것이 없으면 따분해지는지, 딱히 살 것이 없는데 구경 삼아 쇼핑센터를 찾는지, 쇼핑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는지 등의 문항으로 구성된 자기검진 프로그램을 예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광고가 만들어낸 가짜 욕구를 물리치고 의식적으로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생활할 것을 권한다. 문명 사회를 떠나 자연과 접하라거나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같은 사회적 캠페인에 동참하거나 관심을 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 등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는 물질적 빈곤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 등에서는 소비 중독이 만연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물질적 풍요의 탐닉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강한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구성이 다소 산만한 것이 흠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Affluenza / Affluent+Influenza

'어플루엔자'는 '풍요로운'이라는 뜻의 '어플루언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 풍요로워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그래서 과중한 업무와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병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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