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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선거2002]5대 핵심쟁점 비교 (5·끝)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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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선거2002]5대 핵심쟁점 비교 (5·끝) 재벌개혁

입력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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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의 딜레마재벌하면 많은 사람들은 특혜적 성장, 변칙적 상속 및 증여, 시장지배력의 남용 등 부정적 측면을 머리 속에 그린다. 특히 비정상적인 오너통제구조와 비합리적 의사결정, 그리고 이에 따른 과잉투자는 우리 경제를 외환위기에 몰아넣은 주범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에 '개혁'이 재벌이라는 단어 다음에 자리 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재벌정책은 곧 재벌개혁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 속에서 대기업 내지 재벌이 누릴 수 있는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시너지 효과 등 강점이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힘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곤란하다. 바로 여기에 재벌개혁의 방향 설정에 어려움이 있다. 규제를 통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기업 활동과 경제의 활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역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시장규율에 의존하는 개혁은 그 효과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도식적으로 보자면 앞의 문제점은 노무현 후보의 재벌정책에 해당되고 뒤의 문제점은 이회창 후보의 재벌정책에 해당된다.

■이회창식 개혁의 문제점

이회창 후보에 있어서 재벌개혁의 요체는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근절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잘 되는 기업은 더욱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반면 기업의 내부의사 결정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영환경의 확립을 위해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와 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제도에 대해서는 반대 내지 단계적 폐지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부는 재벌의 의사결정이 얼마만큼 투명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칙 아래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기업경영이 투명하고 기업지배구조가 합리적이라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이 과도하게 기업을 규제하는 제도는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의 공약에는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한 뚜렷한 방안이 드러나 있지 않다. 이 후보는 회계 및 공시제도의 강화, 시장경쟁 촉진을 통한 재벌의 합리적 의사결정 유도,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부여 등 시장친화적(Market-friendly)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 사외이사제의 확대 실시,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사법권적 수사권 부여 등의 제도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물론 집단소송제 등은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적지 않은 사회적 낭비가 예견되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의 도움 없이 어느 정도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으며,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노무현식 개혁의 문제점

노무현 후보도 지금까지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잘못 된 점은 인정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빅딜'에 대해서도 오류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노 후보에 있어서 관치경제와 재벌개혁은 별개의 사안이다. 재벌개혁의 요체는 재벌자체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기업지정제와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하면서도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집단소송제가 활성화되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는 총액제한제를 대폭 완화 내지 폐지할 수 있다는 상호 연관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즉, 기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문제의식은 안 보이고, 마치 규제만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외이사제도에 대해서도 노 후보는 이사회의 구성원 반을 사외이사로 채울 수 있도록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물론, 사외이사가 한둘이면 기업 경영에 아무런 실질적 견제 효과가 없는 반면, 반수가 되면 실질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회사의 경쟁력과 발전에 반드시 좋은 것인가라는 점이다. 아무도 단언 할 수 없다면 그 결정은 책임을 지는 회사의 경영진에게 맡겨두어야 한다고 본다.

■종합평가

결론적으로 말하여, 두 후보의 재벌개혁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 후보는 규제 반대, 한 후보는 규제찬성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후보는 장기적 기업경쟁력 보다는, 대주주, 소액주주, 경영자, 노동자, 시민단체 등 여러 이해 당사자 중 누가 나의 어떤 정책을 좋아할 것인가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관성에 얽매여 있다.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보다 바람직한 정책방향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규제완화와 규제강화를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회사의 임원진 및 이사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디에 얼마를 투자하는 등 회사의 기본적 의사결정에 관한 사항(표 A부분)은 기본적으로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회사의 의사 결정이 소액투자자나 시장의 공정거래를 해치는 부분(표 B 부분)에 대해서는 규제와 벌칙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집단소송제나 공정위에 대한 사법권적 수사권 부여를 반대한다면 출자총액제한제의 완화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한편, 경제 체제 차원의 문제(표 C 부분)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은행소유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일견 재벌의 은행 소유제한을 없애는 것이 시장원리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은행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영미식 상업은행법은 은행과 기업간 상호 소유를 제한하고 있다. 과거 재벌들이 자기 소유 하의 금융기관들을 사금고화 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일시적인 규제 유지가 시장원리에 크게 어긋난다고는 볼 수 없다.

공동집필/이 근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채희율 경기대 교수 경제학부

■지금은 이렇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4대 개혁' 중 하나인 재벌 개혁은 금융 개혁과 함께 비교적 성공한 개혁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서둘러 졸업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외환 위기를 불렀던 재벌에 대해 강력한 메스를 들이 댄 결과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IMF 졸업 2년이 지난 지금 출자총액제한제,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 등 재벌 규제의 틀을 언제까지 씌워놓을 것이냐를 두고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재벌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규제 폐지의 시기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는 과도한 규제는 시장 자율성을 침해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조기 폐지론'을 강력 주장한다. 반면 유지론자들은 여전히 재벌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공정 경쟁과 시장 질서를 해치는 상황에서 섣불리 규제를 없애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지금 규제를 없앨 경우 그동안의 성과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재벌 개혁의 또 다른 축인 경영 투명성 제고 장치들도 논란의 대상이다.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 재계는 "즉각 도입 시 기업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반대하는 반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오너 횡포를 막기 위해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후보들의 말

▶이회창 후보

"그릇은 닦는 것이지 무작정 깨뜨려서는 안된다. 재벌에는 나쁜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단절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12월10일, 경제·과학분야 TV 합동토론)

"출자총액제도는 단계적으로 없애야 하고, 집단소송제도는 기업경영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 소송 남발에 대한 예방 장치를 마련하면서 시행을 고려하는 게 좋다." (12월1일 경실련 초청 토론회)

"한나라당은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친(親) 기업적 정당이지만 재벌을 비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11월20일 한국 CEO 포럼 창립 1주년 연설)

▶노무현 후보

"재벌개혁을 한다고 대기업을 해코지 하자는 것은 아니며 재벌개혁을 해야 대기업이 건강해진다"(12월 10일 대선후보합동 TV토론회)

"시장과 기업에 개입하는 정부의 권한과 기능은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시장질서를 지키는데 있어서 소액주주 보호제도 등은 정부가 앞장서서 선도해야 한다"(10월 30일 주한EU상공회의소 초청연설회)

"현 정부의 재벌개혁은 다음 정부에서도 유지돼야 한다. 경영투명화를 위한 제도들이 후퇴하거나 진전이 없는 상황 때문에 경제위기 재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나오는 것이다."(10월 8일 경실련 초청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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