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아 지음 민연 발행·1만5,000원한때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ERR'이란 전리품 수집 특수부대를 조직, 유럽 각지에서 미술품과 유물을 닥치는대로 빼앗았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건립하려는 히틀러의 야심이 직접적 계기였지만, 독일 문화재를 약탈한 나폴레옹에 대한 응징의 뜻도 담겨있었다.
1908년 창덕궁에 세워진 '이왕가(李王家)박물관'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박물관을 둘러보던 고종은 고려청자를 보고 "이것은 어디에서 만든 것이오"하고 물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시대 것"이라고 말했지만 고종은 "우리나라에는 이런 물건이 없소"라고 답했다. 조상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고종이 일본 도굴꾼들이 옛 왕릉을 파헤쳐 빼돌린 부장품의 일부였던 고려청자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보아(38) 추계예술대 교수가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를 엮어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를 펴냈다. 그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을 계기로 시작한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연구로 97년 미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이 실은 수많은 나라들에서 강제로 빼앗아온 '약탈 문화재 전시장'임을 생생한 사례를 들어 전한다. 또 영국이 약탈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 '엘긴 마블스'를 되찾으려는 그리스의 투쟁을 시발점으로, 전세계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문화재 반환 운동의 다양한 사례도 소개한다.
일례로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식민지 시절 빼앗긴, 노르웨이 왕조의 전설을 담은 '플라테이야르복'(1387)과 게르만 전설에 관한 서사시 '에다'의 유일한 필사본인 '레기우스 필사본'(1275)을 20년의 노력 끝에 71년 되돌려받았다. 논란이 많은 법적 소유권보다는 약탈국의 도덕적 의무에 초점을 맞춰 덴마크 지식인들의 반환 촉구 여론을 끌어낸 것이 성공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유출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협상은 프랑스가 소장한 어람용 의궤와 국내의 비어람용 의궤를 맞바꾸기로 합의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 교수는 "프랑스측의 반환 거부 주장을 반박할 논리를 세우는 사전 준비를 생략한 채 성급하게 협상에 임한 결과"라면서 "정부가 나서기보다 전문가 등 민간이 주도해 국제 여론화함으로써 재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한때 냄비처럼 끓었다 식어버린 국민의 무관심도 꼬집는다. "문화재 반환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문화 민족이라면 당연히 제기할 권리이고 의무다. 이제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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