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학기 교수회의에서의 일이다. 매주 수요일 간단한 조찬과 함께 열리는 이 회의에서 우리는 신입생을 위한 필독도서 20권을 선정할 생각이었다.교수들은 학생들이 마르쿠제, 아도르노, 벤야민, 비트켄슈타인, 블로흐, 하버마스 같은 독일 출신의 미학 철학 이론가들은 물론 에코나 로티의 기본이론에 대해 무지한 것에 경악했다.
더욱 극단적인 것은 이 이론가들이 그들의 저서 속에서 반복해 사용하고 있는 그 영원한 질료들―오딧세이, 엘렉트라, 메데아, 플라톤, 헤겔 등과 같은 기본 지식과 그들이 보여주는 아우라, 상징, 동기, 역할들을 강의 때마다 반복 설명해야 하는 작은 비극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경으로부터 시작해 단테, 괴테, 토머스만을 거쳐 그라스의 '양철북'으로 끝이 나는 목록을 간신히 정하긴 했다.
그때 한 교수―스탠 마돌니―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가 만든 이 목록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명작을 필독서라는 이름으로 경전화시킬 것인가, 명작이란 혹 죽은 위인들을 매장한 판테온은 아닌가, 그들을 경배하는 만신전은 아닌가, 반문한 것이다.
그리고는 창조적인 젊은 대학생들에게 이 경전의 목록을 제시함으로써 그들 개인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다른 경전을 빼앗을 것인가 반문한 것이다. 그의 질문에 우리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20권의 필독서를 정독하지 않은 학생들에겐 중간고사 자격을 주지않으려던 교수회의의 노파심도 여기서 끝이 났다.
독일 출판, 문학계에 요즘 '경전논쟁'이 한창이다. 문학비평가 라이히 라니츠키가 선정해 쥬어캄프, 휘셔, 인젤 등 유명 출판사가 공동제작 출판한 21권짜리 독일문학명작선 '경전들'이 논쟁의 시작이다. 라니츠키는 괴테, 무질, 되블린, 안나 제거스, 카프카, 토머스 만, 그라스로 이어지는 독일문학의 산맥들을 정선해 경전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출판에 대해 공격을 가한 것은 구동독출신 작가 에리히 뢰스트이다.
그는 라니츠키의 경전들은 서독문학 위주라서 동독문학경전 출판작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뢰스트의 이 역할은 2년 전 사망한 라니츠키의 선배이며 탁월한 적수인 문예학자 한스 마이어였더라면 훨씬 더 빼어난 기념비적 논쟁이 될 뻔 했다.
중부독일TV방송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이 방송은 직접 독자들의 전화를 받아 20일 독자가 선정한 '독일문학 10대경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특별 TV문학토론 '독일문학 경전, 그 의미와 무의미'이다. 첫번 논쟁자는 우리 대학 학장인 소설 '비엔나무도회'의 작가 요셉 하슬링어교수와 뢰스트이다.
강 유 일 소설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강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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