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한의사의 아홉번째 자식은 총명했다. 서울로 유학 온 아들은 시위 예비음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1년 반 만에 나왔다. 반강제로 군에 입대했고 광주 민주화운동이 터졌다. 보안대에서 보름 가까이 고문을 당했다. 1982년 전역했을 때 독재자의 자리에 다른 독재자가 앉아 있었다. 소설가 김영현(47)씨의 젊은 날은 그대로 상처 난 한국 현대사였다. 1970년대 유신의 상처, 1980년대 광주의 상처를 그는 글로 옮겼다. 아프고 치열한 체험을 소설로 쓰되 김씨는 건조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것이었다. 소설의 미학을 성취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1990년대 초반 이른바 '김영현 논쟁'으로 불붙기도 했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되 아름다운 시선을 갖겠다는 김씨의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말한 그이다. "꽃은 백화난방(百花亂邦)해야 아름답고 새는 백조쟁명(百鳥爭鳴)해야 아름다운 법이다. 나 역시 꽃피우고 노래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숙명일까."그런데 그 현실은 희미해진 것 같다. '후일담'으로 불리던 것마저도 멀어진 오늘, 김영현씨가 두번째 장편소설 '폭설'(창작과비평사 발행)을 펴냈다. '풋사랑' 이후 9년 만의 두번째 장편이며 소설집 '내 마음의 망명 정부'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신작이다. 그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사라진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김씨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소설로 쓰고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새로운 군사정권이 철퇴를 휘두르는' 때에 막 전역한 장형섭이 귀향했다. 형섭은 대학 재학 중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했다가 실형을 산 뒤, 출감 직후 입영 통지를 받고 군대에 가야 했다. 언제까지나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대학 친구 연희와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뒤였다. 제대 후 연희가 지하단체 '열심당'을 이끄는 성유다의 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때 다시는 연희와 만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연희 어머니는 형섭을 다시 찾아와 소식이 끊긴 연희를 찾아달라고 청한다. 성유다의 옛 애인 윤애림의 소개로 유다와 연희를 만났지만, 형섭을 쫓는 정보부원의 미행으로 유다는 체포되고 연희는 부상한다. 다친 연희가 세상을 떠나고 유다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 큰 눈이 왔다. 형섭의 마음 속 연희의 빈 자리에 애림이 들어오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소설은 시대의 고통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랑으로 끝맺는다. 김씨는 어쩌면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대한 회고를 외롭게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낭만적인 방식으로. 그는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나온 존재다'는 체 게바라의 말로 낭만을 변호한다. 낭만은 꿈과 현실의 공존으로부터 나온다고,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은 멸종해버린 공룡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왜 아직껏, 이라는 물음에 김씨는 답한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신화를 잃어버린 존재는 날개를 잃어버린 닭의 족속처럼 초라할 뿐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절을 자신이 살아갈 시간을 밀어가는 힘으로 삼는다. 그에게 소설은 그의 꿈이고 그의 힘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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