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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칼럼]냉랭한 FA컵, 협회 냉대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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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칼럼]냉랭한 FA컵, 협회 냉대탓

입력
2002.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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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83 시즌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던 시절이다. 아인트호벤은 네덜란드 FA컵 준결승에서 아약스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아약스는 여세를 몰아 FA컵에서 우승했고 언론은 아약스가 네덜란드 최고 명문으로 떠올랐다고 요란을 떨었다. FA컵 우승 상금은 정규리그와 똑같을 만큼 권위가 대단하다. 스탠드가 꽉 차는 건 물론이다. 남미와 다른 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그런데 우리 현실은 한참 다르다. 남해 김천을 거쳐 제주에서 결승을 남겨둔 FA컵은 열성 서포터스만의 잔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광판은 물론 시계 하나 없는 썰렁한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서포터스의 모습은 애절함마저 들게 했다. 서포터스도 대부분 팀 당 30명을 밑돈다. 김천의 한 경기는 축구 관계자 등을 포함해 경기장을 찾은 인원이 200명이 안됐다는 얘기도 있다.

FA컵은 말 그대로 각국의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가 이름을 내건 대회다. 그 나라 축구의 얼굴인 셈이다. 프로와 아마가 모두 출전하는 FA컵은 프로팀이 우세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우리도 올해 8강이 모두 프로팀으로 채워졌다. 프로팀이 패권을 다투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FA컵은 정규리그와 다르다. 우승팀은 우선 대륙별 클럽대항전에 나갈 수 있다. 그 나라 축구의 대표 자격을 얻는다는 얘기다.

FA컵의 권위와 격을 대한축구협회가 스스로 깎아 내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매치와 FA컵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를 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지난달 20일 브라질과의 A매치를 앞두고 축구협회는 홍보와 의전에 열을 올렸다. 국가의 명예가 걸렸다는 명분을 앞세워 거액의 개런티를 지불했고 협회장의 참석을 준비하는 데 전직원이 매달렸다. 반면 FA컵은 대회 스폰서만 따내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FA컵과 A매치가 같냐"는 관계자도 있다.

정규리그의 아류 정도로 전락한 FA컵의 문제점은 자명하다. 대회 기간과 진행 방식은 유럽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제도를 개선하려는 협회의 의지다. 풀뿌리 축구는 무시한 채 국가대표 경기에만 신경쓰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차라리 FA컵을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전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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