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 입으면 누구나 불편해요. 그렇지만 예쁘게 보이고 싶으니까 불편함을 감수하지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열 명에게 물어보면 열 명 다 편한 옷보다는 예쁘게 보이는 옷을 입고 싶어해요. 패션욕구라는 게 일반인들만의 것은 아니잖아요."12일 오전 장애인의상 패션쇼 리허설에서 만난 디자이너겸 모델 윤정의(39·사진)씨는 화려한 파티웨어 차림으로 활짝 웃었다.
소아마비로 목발에 의지해 움직이는 몸이지만 난생 처음 패션쇼의 모델로 선 기쁨에 아침 8시부터 이어진 리허설과 패션쇼 등 강행군이 힘들지 않다는 표정이다.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소장 김성윤)가 주최한 '장애인의상패션 페스티발'이 '산타의 선물'이라는 주제로 이날 오후 2시반과 6시반 서울 삼성동 패션센터에서 열렸다. 장애인 35명이 직접 모델로 서고 장애인을 위해 특별 제작한 파티웨어, 웨딩드레스, 기능성 작업복 등 70여벌이 무대에 올랐다.
신체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서부터 가능하면 남의 눈에 띄지않도록 욕구를 억누르며 사는 데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이 행사는 모처럼 스스로의 욕구를 마음껏 펼쳐보이는 자리로 큰 호응을 얻었다.
장애인의상 패션쇼는 장애인들에게 옷을 통한 정서적 만족과 신체적 긍지를 갖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1998년부터 장애인의상연구소를 이끌어온 김성윤 소장은 "장애인들의 가장 큰 아픔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와 자신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사회 분위기다. 장애로 인해 몸은 정상적이지 않지만 감성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사회는 이들을 외모로만 평가한다. 의복을 통해 이들의 자긍심을 키워주자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무대에 올린 옷들은 겉보기엔 일반인들의 의상과 별 차이가 없으나 장애 유형별 불편사항을 꼼꼼히 점검해 기능성을 보강한 것이 가장 큰 특징.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위해서는 소매가 쉽게 닳지않도록 소매를 탈착할 수 있는 코트를 만들었고 바지 길이도 발등을 덮을 수 있도록 앞자락과 뒷자락의 길이가 틀리게 했다. 앉은 상태에서 바지를 입은 모습이 예쁘게 보이도록 복부 부분을 이중으로 처리하고 옆 트임을 양쪽에 달아 입고 벗기 편하게 만든 옷들도 있다.
기능성에 트렌드를 가미해 장애인들의 패션욕구를 제대로 풀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쇼에서 선보인 옷들은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는 영문학을 전공, 현재 디자이너 겸 학원 영어강사로 활동하는 윤정의씨가 디자인했다. 지난 5년간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가 축적해놓은 장애의상 기능성 연구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윤씨는 "일반인들이 장애인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이다. 사회 부적응자, 또는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이겨낸 초인. 그런데 대부분의 장애인은 일반인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극단적 인물형이 아닌 평범한 이웃인 장애인들의 삶을 반영하는 옷을 만들고, 그런 옷이 상품화돼서 장애인들이 쉽게 구해 입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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