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선 D-6 / 행정수도 이전 논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선 D-6 / 행정수도 이전 논란

입력
2002.12.13 00:00
0 0

1970년대 후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국가 안보 차원에서 추진됐던 '천도(遷都)'가 20여년 만에 다시 첨예한 공방의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행정 수도 지방 이전'을 들고 나온 데 대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실현 가능성 없는 인기 영합적 공약"이라고 몰아세우면서 대선 막바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것. 수도 전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행정 기능만 이전한다는 점, 안보 차원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20여년 전 상황과는 차별적이다. 하지만 선거용 쟁점으로만 부각되면서 실현 가능성이나 효과에 대해 근거 없는 공방만 난무할 뿐 객관적이고 진지한 논의와 검증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 국가 대계(大計)의 하나로 초당적이고 범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정 수도 이전의 '허(虛)와 실(實)'을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행정 수도 이전 실현 가능한가

민주당이 행정 수도를 충청 이남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온 것은 수도권의 과밀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경제, 교육, 문화, 행정, 사법, 입법 등 국가의 주요 기능이 수도권에만 편중됨으로써 집값과 땅값이 급등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근거한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수도권 집중은 해를 더할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원칙론에는 동조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우선적인 고려 대상은 한나라당이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이전 비용 문제. 민주당 주장(6조원) 대로라면 빠듯하나마 국가 재정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지만, 한나라당 주장(40조원)이 맞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비용 투입 만으로 행정 수도 건설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찮다. 금융과 산업, 교육, 문화 등을 함께 이전하지 않으면 행정 부처에 딸린 공무원들의 생활 터전 이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대전청사에 근무하는 상당수 공무원들이 서울과 대전에 두집살림을 하는 행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전 효과와 부작용

찬성론자들은 "수도권 분산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지역의 균형적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의 시각은 양극으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서울의 공동화(空洞化)와 새로운 행정 수도의 또 다른 집중화를 우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행정 기능을 갖는 절름발이 도시만 탄생할 뿐 수도권 집중은 전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정 기능과 경제 기능의 공간적 분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천양지차다. 70년대 수도 이전 입지를 입안하는데 참여했던 한 학자는 "호주나 브라질 등도 사실상 행정 기능만 이전되면서 기업인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목원대 박 경(朴 璟) 디지털 경제학과 교수는 "더 이상 정부 주도형 발전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의 공간적 분리는 시장 자율성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칫 통일 후 재(再) 천도가 이뤄져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수도 이전 문제는 통일 이후의 상황까지를 고려해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도 대두된다.

이처럼 사안 별로 견해 차이가 극심한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범 국가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외국의 사례

독일은 통일 후 수도 이전 논쟁이 벌어져 1991년 연방의회 표 대결을 통해 베를린을 통일 수도로 결정했다. 본의 부동산 가격 폭락 등을 고려한 단계적 이전 원칙에 따라 본에는 현재 국방부 등 6개 부처가 남아 있고 10개 부처는 베를린으로 옮겼다.

말레이시아는 95년 마하티르 모하자드 총리가 콸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푸트라자야를 행정수도로 지정, 98년 우선 총리실을 이전했다. 행정 기능의 완전한 이전은 2005년께 끝날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1908년 캔버라를 새 수도로 선정한 뒤 1927년 멜버른에서 수도를 이전했다. 브라질은 55년 건설 공사에 착수, 60년부터 정부 부처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옮겼다. 인구 약 1,200만명의 도쿄(東京) 등 수도권 과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은 88년부터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들어가 4년 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의회 및 중앙의 행정 부처, 대법원 등이 이주 대상 기관으로 선정됐다. 99년12월 후쿠시마(福島), 기후(岐阜)현 등 4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하고도 최종 후보지를 정하지 못한 데다 도쿄의 반발이 커서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전문가 견해

● 김재익(金載益) 계명대 도시공학과 교수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적 대역사이다. 단순히 중앙행정기능의 지방이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토공간상의 기능재편과 막대한 금전적·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 이처럼 중요한 국가적 정책방안이 적절한 국민적 의견수렴과정이나 타당성 연구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실천이 약속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은 행정 구역상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으로 구분되지만 기능적으로는 상호 밀접하게 얽히고 설킨 하나의 공간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활동을 유인하고 수도권뿐 아니라 국가의 대외경쟁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행정기능만 떼어내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다른 부문과 지역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것이 국가 및 지역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만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 박경(朴璟) 목원대 디지털경제학과 교수

수도권 인구는 1990년부터 5년 사이 강원도 인구 만큼인 160여만 명이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수도권은 5년마다 100만 명 이상씩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수도와 경제수도가 분리되면 지역 균형발전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행정수도 이전비용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70년대 행정수도 건설 당시 추정한 총 건설 비용은 대략 5조원(77년 불변가격 기준)이며, 민간부담 몫과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재산의 매각 수입 등을 제외한 순수 정부의 재정부담은 약 2조원이었다. 77년에 비해 물가가 약 4배 증가했으므로 현재 가격으로 총 건설경비는 약 20조원이지만 순수 정부 재정 부담은 약 8조원 정도면 된다. 행정수도 이전이 몇 년에 걸쳐 분산투자 된다고 보면 정부부담은 연간 1∼2조원 이내에 그친다. 현재 서울의 교통혼잡비용이 1년에 5조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 수도권의 집값은 내려가는 것이 좋다. 그만큼 서민 부담이 줄어든다. 또 내 집값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집값이 내려감으로써 모두가 싼 주택가격의 혜택을 보는 것이다.

● 이재준(李在浚) 경실련 도시재생분과위원장

현재의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된 정치권의 공방은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근본적으로 수도권집중 완화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비롯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도권집중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는지 이로 인해 지방균형발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선 전까진 실효성 여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불과 5∼7개월 만에 급조된 계획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여론 수렴은 절차상의 민주화라는 당위성 측면에서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더 이상 이 문제를 정치적 선거전략 차원에서 공방을 하지말고 차분히 대선 이후로 넘기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선 이후 어느 정당이 집권하던 간에 앞으로 행정수도 이전은 범정부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아래 일관성 있게 접근돼야 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균형적 발전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며 행정가 전문가 시민단체 등 모두가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추진돼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