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장 점유율 70%대를 기록하는 차가 있을까. 시장점유율 70%대는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서, 천하 통일에 비유될 수 있다. GM대우자동차의 마티즈가 국내에서 유일한 시장점유율 70%대의 차다. '경차 지존' 마티즈는 1998년 출시 이후 4년여동안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은 것은 물론 줄곧 경차 시장의 3분의2 이상을 장악해왔다. 마티즈의 성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우중 전 대우회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91년 티코를 생산하고 있던 대우는 후속 차종을 준비중이었다. 95년께 당시 김 회장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 업체인 이탈디자인을 방문했고, 거기서 디자이너 주지아로의 컨셉트 경차를 보게 됐다. 주지아로의 컨셉트 경차는 94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출품됐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사장된 모델이었다. 김 회장은 경쟁자들이 외면한 이 경차 디자인에 주목했고, 결국 티코 후속차종으로 낙점했다.당시 대우차 관계자는 "이탈디자인의 컨셉트카는 현재의 마티즈보다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며 "김 회장이 디자인 도입을 결정한 뒤 대우차 연구소에서 약간 변형했다"고 말했다.
마티즈는 이전의 경차와는 다른 깔끔한 스타일로 고객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마티즈의 대성공은 귀엽다고 까지 할 수 있는 디자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자동차판매 마케팅실 구자민 팀장은 "경쟁차종이었던 아토스는 껑충했고, 그이전의 티코는 왜소해 보였던데 비해 마티즈는 세련된 앞모양에서부터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줬다"고 말했다.
대우차는 이전 경차인 티코를 만들 때에는 '싼 차'에만 초점을 맞췄었다. 하지만 대우차는 시장 조사를 통해 경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변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성능과 스타일, 안전도가 향상된 경차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마티즈는 유럽의 안전법규인 40% 오프셋 충돌 테스트를 만족시키고, 전자식 시트벨트 프리텐셔너(견인장치)를 적용해 경차로서는 보기드문 안정성을 갖췄다. 물론 마티즈 출시를 준비하던 중 외환위기(IMF 체제 돌입)를 겪으면서 연비 등 경제성도 다시 부각됐다.
대우차는 'IMF 시대에 필요한 경제적인 고급 경차'를 브랜드 컨셉으로 정했다. TV광고(CF)는 덩치가 큰 스모 선수를 등장시켜 '큰 차 비켜라. 빈틈없다, 단단하다'는 카피를 앞세웠다.
그런데 98년 4월 마티즈가 출시되자마자 경쟁차종과의 싸움은 스타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 아니라, 엔진 성능에 관련된 '기통(실린더) 수 논쟁'으로 불붙었다. 경쟁차종이었던 현대차 아토스는 실린더수가 4개인 4기통 엔진이었지만, 마티즈는 3기통 엔진을 달고 나왔던 것이다. 현대차는 3기통 엔진이 성능과 승차감에서 문제가 있다고 공격했고, 대우차는 반격을 가하면서 기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결국 기통수 논쟁은 출시 첫해 마티즈가 단숨에 56.8%의 시장 점유율을 올리면서 승리를 거뒀다.
마티즈는 출시 이듬해인 99년에 경차 시장 점유율을 63.0%로 끌어올렸고, 이어 2000년 67.6%, 2001년 73.4%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대우차는 2000년 외관을 세련되게 바꾸고 신세대 감각의 깜찍한 이미지를 강조한 마티즈 II의 출시로 시장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었다.
올들어 경차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등으로 마티즈의 시장점유율은 다소 하락해 70.7%(1∼10월)에 그쳤으나, 70%대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처럼 식을 줄 모르는 마티즈 열기는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전례없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마티즈의 성공은 해외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티즈가 해외에서 받은 상은 모두 15회로, 출시 후 매년 5회씩 해외에서 수상하며 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수상기록을 세우고 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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