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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22)성수동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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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 (22)성수동 공장

입력
2002.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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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공장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림물감에 크레파스, 스탬프 잉크에다 1963년 들어서는 모나미153 볼펜까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계화된 생산방식이 아닌 완전 수공업 체제였던 탓에 생산 품목과 생산량의 증가는 인력 증가로 이어졌고 그에 맞춰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마침 공장으로 사용하던 공덕동 창고의 임대기간이 만료되자 나는 신설동으로 공장을 잠시 이전한 뒤 본격적으로 공장 부지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 중심 지역은 공장 건설이 불가능했다. 문구사업의 전망이 밝은 만큼 기존 공장보다 몇 배 더 넓은 공간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회사 재력으로는 서울 중심 지역에서 부지를 구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개업자로부터 성수동에 부지가 있다는 연락이 와 회사 직원들과 함께 가보니 공장 부지로 나온 땅은 배추밭이었다. 지금은 빌딩과 주택이 꽉 들어찼지만 당시만 해도 성수동은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함께 땅을 보러 간 간부 직원들은 공장 부지가 서울과 너무 떨어져 있을 경우 원료 및 제품 운반에 불리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로 배추밭 1,100평을 매입했다. 직원 의견을 무시하고 성수동 부지 매입을 밀어붙인 데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부지를 물색하던 1962년은 제1차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의 1차 연도였다. 국가기간산업 및 사회간접자본, 전력 석탄 등 에너지원 등을 확충하고 매년 경제성장률을 7% 이상 달성한다는 것이 1차 계획의 주요 내용이었다. 곳곳에서 국가경제를 재건하는 쇠망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미리 싼 값에 좀 더 넓은 부지를 사두고 싶었고, 사세 확장 속도와 당시 회사 재력을 감안할 때 마침 매물로 나온 성수동 부지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결론내렸던 것이다.

예상대로 성수동에 공장을 지은 지 6∼7년도 지나지 않아 성수동 공장 인근에 제2 공장을 짓지 않으면 안될 만큼 사세는 급성장했다. 그 때 성수동 지역은 이미 서울 외곽의 공업지대로 각광받고 있었다.

63년초 광신화학은 마침내 성수동에 새 보금자리를 열었다. 1,100평 부지에, 비록 수공업 체제였지만 물감, 크레파스, 볼펜, 스탬프 잉크 생산시설을 갖췄다. 사무실과 식당 공간을 제하고도 부지가 남아 배구장을 짓고 나머지 땅은 배추와 무 밭으로 활용했다. 식사 때면 회사 밭에서 기른 배추로 만든 김치를 나눠 먹고, 식사 후에는 편을 갈라 배구 경기를 즐겼으니 요순(堯舜) 시절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내 머리속은 바삐 움직였다. 모나미 물감과 왕자파스, 모나미 153 볼펜이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그 정도 품목에만 의존한다면 회사는 소기업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다른 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도 경쟁력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일본 주거래처인 우치다요코(內田洋行)의 혼도(本堂) 무역과장이 성수동 공장 설립을 축하할 겸 해서 회사에 왔다. 혼도 과장은 공장을 구경한 뒤 본론을 꺼냈다. 가방을 열더니 2종류의 필기구를 내 앞에 내밀었다. 사인펜과 매직펜이었다. 사인펜을 손에 잡고 종이에 글씨를 써보니 굵은 글씨가 부드럽게 써졌다. 매직펜은 종이는 물론이고 벽이나 나무, 벽돌 등 어떤 곳이든 쓸 수 있었다. 내가 즉석에서 우치다요코측에 기술제휴 생산을 제안하자 혼도 과장도 흔쾌히 응했다. 63년 8월 사인펜과 매직펜 생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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